옷차림이 누추하다며 나이트클럽 입장을 거부당하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손님들이 빠져나가기도 전에 종업원들이 꽁지를 뺐고 손님들은 유독가스를 특수효과로 오인했다. 어처구니없는 화재는 참사가 됐다.
25년 전 오늘(1991년 10월 17일) 대구시 서구 거성회관 나이트클럽에 난 방화로 16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에 위치한 나이트 클럽 손님 100여명 중 30%가 사상된 참사였다.
당시 이 사건이 발생하고 이틀 뒤 서울 여의도에서 발생한 '여의도 질주사건'이 일어나면서 묻지마 범죄에 대한 사회적 공포감이 극도로 높아졌다. 여의도광장에서 사회에 불만을 품은 시각장애인이 차를 몰고 질주하면서 초등생 2명이 치어 사망하고 20여명이 다치는 사고였다.
방화의 시작은 그야말로 '별일'도 아니었다. 영농후계자 김모씨(당시 29세)는 친구 3명과 술을 마신 뒤 찾은 나이트클럽 입구에서 복장 문제로 입장을 저지당하자 실랑이를 벌였다. 그의 옷차림이 누추하다는 이유였다.
경북 금름(현재 김천시) 인근에서 농장을 운영하던 김씨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보여줬지만 결국 입장하진 못했다. 그는 이같은 푸대접을 참지 못했다. 김씨는 80m 가량 떨어진 주유소에서 휘발유 6L를 사와 뒷문으로 침입했다.
무대 바닥에 뿌리고 갖고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종업원 중 일부 직원이 김씨의 방화 모습을 보고 저지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삽시간이 불길이 솟았다. 무대와 커튼, 카펫 등은 유독가스를 내뿜으며 타올랐다. 김씨는 곧바로 도주했으나 경비원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이때 불이 진압됐더라면 방화 소동으로 끝났을 일이었다. 하지만 종업원 20여명은 방화 소식을 듣고 먼저 달아났고 이중 2~3명만 무대쪽으로 돌아와 화재를 알리고 손님들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손님들은 무대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특수효과'로 착각해 더욱 열광했다. 게다가 큰 음악 소리에 일부 종업원의 대피 명령도 잘 듣지 못하면서 대피가 늦어졌다.
특히 일부 종업원이 전기로 인한 화재로 착각해 내부 조명을 차단하면서 나이트클럽은 암흑 상태가 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이미 330㎡(100평) 가량 되는 나이트클럽 내부에는 유독가스가 가득 찼고 비상구는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는 출입구 폭도 2.6m밖에 안돼 대피가 늦어졌다.
불은 20분 만에 진화됐지만 피해는 컸다. 인근 병원은 사상자들로 가득 찼고 유가족들은 대성통곡했다. 유가족들은 특히 참사가 벌어진 어이없는 경위를 듣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이트클럽 내부가 모두 탔고 재산피해 금액은 3억원으로 추정됐다.
인명피해가 큰 만큼 대구 부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사고수습을 위해 대책본부가 꾸려졌다. 보험금으로 사망자에겐 1000만원이 지급됐다. 이후 유흥업소 등에 대한 소방안전 등이 강화되기도 했다.
방화범 김씨는 범행을 모두 인정했고 현주건조물방화 치사상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돼 복역 중이다. 전원 스위치를 내린 종업원에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