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오늘… 출근길 한강 다리 붕괴 '32명 사망'

진경진 기자
2016.10.21 06:00

[역사 속 오늘] 성수대교 붕괴...직장인과 학생들 희생

1994년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 당시 상황./사진=서울시 소방재난본부

22년 전 오늘(1994년 10월 21일) 아침 가을비가 내리는 것 빼곤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창밖에 비오는 한강 대교는 운치있었다.

오전 7시40분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성수대교 10번과 11번 교각 사이 상판이 무너져내렸다. 비가 내려 천천히 다리를 지나던 16번 시내버스와 봉고·승용차 등 차량 10여대는 한강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대부분 강남에서 강북으로 넘어가던 차량들이었다. 너무 순식간에게 벌어진 일이라 손 쓸 겨를도 없었다. 말 그대로 출근길 날벼락이었다.

뒤따르던 차량들은 브레이크를 밟았고 미처 멈추지 못한 승용차 몇 대는 뒤이어 떨어졌다. 브레이크 파열음과 자동차 클랙슨 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뒤섞이면서 일대는 혼란에 빠졌다.

약 50m 높이에서 떨어진 차량들은 납작하게 일그러졌고 무너진 교각 상판에는 피가 흥건했다. 이 사고로 32명의 사망자와 17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당시 강남 거주 학생이 강북의 학교로 배정되는 경우가 있어 희생자 중에는 중고등 학생 9명이 포함됐다. 당시 한 생존자는 "아침 일찍 비가 내려 혹시 지각을 하진 않을까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집을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성수대교는 1년에 총 4차례 안전진단을 실시하는데 사고 두달 전인 8월에도 안전진단을 했기 때문이다. 사고 전날인 20일에는 다리 일부 구간 보수공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다리를 건설한 동아건설은 "최근 성수대교 교통량이 급증하면서 하중을 견디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교량의 하자 보수기간이 5년으로 돼 있어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조사 결과 1차 직접적인 원인은 부실시공으로 드러났다. 다리 상판을 떠받치는 철골구조물 수직재의 용접 부위가 불량시공돼 차량 하중을 견디지 못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용접이 덜 된 부분도 확인됐다.

이는 행정당국의 관리가 허술했던 탓이기도 하다. 특히 동부건설사업소는 사고 전년도에 성수대교가 심각한 붕괴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서울시에 보고했지만 1년6개월여 동안 아무런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은 사실이 검찰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설계용량을 초과한 차량 통행을 통제하지도 않았다.

이 사건으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했고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원종 전 시장이 경질됐다. 이후 서울시내 교량을 대상으로 일제 안전점검에 들어갔고 당산철교가 위험 판정을 받아 철거 후 재시공되기도 했다.

성수대교는 다음해 4월 현대건설이 전체 상판과 철골 구조물 교체 공사에 착수했다. 이후 2년 8개월만인 1997년 7월3일 왕복 8차선으로 확장돼 개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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