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른이 돼 아버지는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큰 일을 했다고 자랑스럽게 여겨줬으면 한다. 정의를 위해 큰 일을 한 것 같아 후회는 없다."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평범한 아버지 박기서씨(당시 46세)는 20년 전 오늘(1996년 10월 23일)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으로 알려진 안두희씨(사망당시 79세)를 살해한 뒤 경찰에 자수하며 이 같은 심경을 밝혔다.
경기 부천에 살고 있던 박씨는 이날 오전 4시 30분쯤 집을 나와 안씨가 사는 인천 중구 아파트에서 때를 기다렸다. 오전 11시30분쯤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박씨는 안으로 들어가 동거녀를 묶고 옆방에 누워있던 안씨를 나무 몽둥이로 폭행했다.
당시 중풍으로 거동조차 불편했던 안씨는 특별히 반항하지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장교였던 안씨는 1949년 6월 백범을 총으로 살해해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집행정지를 받은 뒤 복귀했다. 이후 백범 암살 배후를 밝히기 위한 사회운동가 등을 피해 은신해 있었다.
박씨가 휘두른 몽둥이는 '견이사의 견위수명(이로움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던져라)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글귀가 적힌 종이로 둘러싸여 있었고 '정의봉'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박씨는 거사를 치른 뒤 곧장 평소 다니던 부천 삼정동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하고 인천 중부경찰서에서 자수했다. 그는 "백범 선생을 존경하고 정의감에서 범행을 결심했다"며 "관련 단체와 관련 없는 단독범행"이라고 담담히 밝혔다.
그는 특히 백범 암살의 배후를 추적해 온 사회운동가 권중희 선생이 쓴 책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사건 당일 권 선생에게 연락해 범행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박씨는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는 권 선생의 만류를 뿌리쳤다.
박씨는 이같은 사실을 가족들에도 비밀에 부쳤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한 달 전부터 안두희를 없애 역사를 바로 잡아야 겠다는 말을 했다"며 "사건 당일 비번이었고 등산을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섰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 사건으로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박씨의 무죄판결을 위한 구명운동이 벌어졌고 국민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박씨를 통해 '안씨가 죗값을 치렀다'며 독립운동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박씨가 저지른 살인죄에 대한 처벌은 받아야 하고 백범암살에 대한 진실규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안씨를 살해한 데 대해 오히려 배후를 감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재판에 넘겨진 박씨는 9년을 구형받았지만 1심에서 살인죄 최소형량인 5년이 선고됐고 2년이 감형돼 3심에서 3년형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박씨의 범행동기나 목적은 주관적으로 정당성을 가진다"면서도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선 용인될 수 있는 정당성을 갖는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각계의 구명운동으로 그는 1998년 3월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났다. 박씨는 현재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