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다니는 게 귀찮을 걸까. 겨울 칼바람에도 고개만 까딱까딱, 유유히 공원을 '걷는' 비둘기. 12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도시에 적응한 '닭둘기'(닭+비둘기)는 도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둘기→닭둘기'…평화의 상징에서 '극혐의 상징'
비둘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바꾸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회기본능(비둘기 편지) 습성 탓에 고대부터 평화·사랑의 상징이었지만, 도시생활에 적응하면서 기생충·세균을 떨어뜨리는 혐오 대상으로 전락했다.
도심 속 비둘기는 겨울에도 쉽게 먹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렇다 할 월동준비가 필요치 않다. 도처에 먹이가 많으니 기피제를 뿌려도 아쉬울 게 없고 잡식성에다 식욕까지 좋아서 몸무게(평균 300g안팎)의 3~4배를 먹기도 한다. 매·독수리 등 천적도 없으니 야생에서 보통 연 1~2회(알 2~3개)인 번식도 6~7회로 왕성하다.
비둘기의 서식환경과 인간의 도심생태계 조성목적까지 맞아떨어지다 보니 개체수는 급증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한 크고 작은 행사에서 방사된 비둘기는 2006년 서울 등 수도권에서만 100만마리(한국조류보호협회 추정)가 넘었다.
2009년 환경부 유해동물지정에 맞춰 서울시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주요 도심에 서식하는 비둘기는 3만5000여마리다. 이후 개체수 조사가 진행된 적이 없어 정확한 개체수는 파악이 어렵지만 서울 주요 도심 내 비둘기는 5만마리가 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이렇게 비둘기는 급증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없는 상태다. 유해동물로 지정돼 포획이 가능하지만 2009년 이후 사살·포획 접수된 비둘기는 없다. 주택가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주로 서식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포획작업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비둘기가 떼로 몰려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쏟아내는 산성 배설물은 문화재·교량·건물 부식 원인으로 손꼽힌다. 국보 2호인 원각사지십층석탑(서울 종로구)은 비둘기 배설물 등으로 부식이 심해지자 유리막을 씌웠다.
환경부에 따르면 비둘기가 모이는 곳은 밀집지역으로 관리되며 서울 40곳을 포함, 전국 82개에 달한다. 주요 밀집지역은 각 지자체에서 관리하며 도심 내 주요 문화재와 철도·항공 등 인구 밀집지역을 대상으로 한다.
◇인간에 의존하는 비둘기…'피존맘' 사라져야
도심에서 마주치는 비둘기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인식도 문제다. 평소 비둘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시민들이 무리지은 비둘기를 피해 다니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비둘기는 하루에 수차례 목욕하는 깨끗한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도심에서 살다보니 중금속 등에 쉽게 노출돼 직접 만질 경우 가려움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 도심 비둘기는 아연·카드뮴 등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 농도가 상당히 높다. 도심 내 납 오염측정기준으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도 이뤄졌다.
다만 비둘기가 직접 피해를 끼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혐오감'으로 인한 문제·민원이 많다는 게 지자체의 설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둘기 혐오 민원이 대부분"이라며 "혐오감 때문에 무작정 포획할 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과 동물보호단체 등도 포획보다 직접 먹이를 주는 행위를 줄이고 음식물쓰레기 등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 공존하는 도심 생태계를 만드는 게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유럽 등에서 실시한 비둘기 포획 정책 등도 효과가 미진했다고 덧붙였다.
김창회 국립생태원 박사는 높아진 비둘기들의 인간 의존성 문제를 지적하며 "비둘기의 야생성을 잃어선 안된다"며 "인간의 도움 없이도 살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스스로 야생성을 키우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비둘기가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며 "결국 인간이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못하도록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