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 위주 문화가 자리 잡고 있던 문민정부(김영삼정부) 시절 남녀 균등 정책이 첫발을 뗐다. 1996년 직급별(5~9급)로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한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가 처음으로 시행됐다. 이 제도는 공직 사회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에 여풍이 시작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는 시행 전부터 사회적 논란을 몰고 왔다. 당시만 해도 초등학교 교원 임용시험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공무원시험에서 남성 합격자들이 많았다. 남성들이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가 역차별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당시 정책을 만들던 총무처(현 인사혁신처)로 비난이 폭주했다. 정책 실무를 담당하던 인사정책과 주무 사무관에게 인신공격까지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딸만 둘이었다. 딸 때문에 이 같은 정책을 만든다는 온갖 말들이 나왔다. 이전에도 양성 균등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진정성이 오해를 받자 결국 어린 두 딸에게 “절대로 공무원이 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이 주무 사무관이 바로 김동극 인사혁신처장(56·사진)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김 처장이 남성들로부터 갖은 비난을 받으며 추진했던 양성 균등 정책이 지금은 오히려 남성들에게 ‘전화위복’이 됐다는 사실이다. 여성공무원채용목표제는 2003년부터 5명 이상 공무원채용시험에서 한쪽 성이 최소 30%가 되도록 추가 채용하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로 확대 시행됐다.
그리고 최근 여성의 공무원 합격률이 남성을 크게 웃돌면서 남성을 배려하는 제도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지난해 외교관 후보자 선발시험에서 여성 합격률이 70%를 넘어서자 남성 3명이 추가 합격했다. 또 서울시교육청의 9급 일반 공무원 임용시험 교육행정과 사서 직렬에서 각각 3명과 1명의 남성이 추가 합격하기도 했다.
#. 김 처장은 경북 영주 출신이다. 행동과 말이 느리고 매사에 신중하다.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영남의 선비다. 하지만 깜짝 반전이 숨어있다.
“성격이 엄청 급해 라면을 끓일 때 물이 끓기는커녕 미지근한데 먼저 면을 넣어버려요. 그리고는 익기도 전에 불을 꺼 설익은 라면을 먹기 일쑤죠. 거리를 걷다가도 빨간 신호 대기시간을 못 참아 우회로로 돌아서 갈 정도입니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넌지시 물어봤다. 인사혁신처의 한 직원은 그를 가리켜 “‘생불’이라고 부른다. 잘못을 해도 화를 내는 법이 없다. 말을 많이 하기보다 직원들의 말을 경청하는데도 탁월하다”고 귀띔했다.
김 처장은 이에 대해 “나는 답답할지 몰라도 절대 직원들을 재촉하는 법이 없다”며 “싫은 소리도 잘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푸는 게 많다”고 웃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겠다’고 묻자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이 천직인지 스트레스가 쌓인 적은 없다. 힘들 땐 2시간 정도 산책을 한다. 퇴근 후 세종시 청사 주변과 거리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답했다.
아직은 좁디좁은 세종시 사회에서 혹시라도 직원들이 마주치면 불편해할까봐 마트도 문 닫을 시간이 다돼서 간다는 그다. 직원들 사이에서 ‘배려의 아이콘’으로 불리는지 짐작됐다.
그는 직원들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다. 노조와의 관계도 중시한다.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공무원 노조 사무실 방문이었다. 상견례를 하고 노조원들의 이야기를 청취했다. 지난해 말에는 노조 관계자를 노사 문화 유공자로 선정해 포상하기도 했다.
#. 김 처장은 인사혁신처에서 역대급으로 많은 정책을 실행하고 변화를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이근면 전 처장이 마련해 놓은 정책에 수저만 올렸다”고 겸손해했지만, △전문성 강화를 위한 전문직 공무원제 도입 △공직사회 활력 제고 방안 및 재해보상제도 개편 △세종청사 이전에 따른 공무원 근무제도 혁신 △공직윤리제도 개선 등 굵직굵직한 변화가 그의 손을 거쳐 세심하게 다듬어져 실행됐고 만들어지고 있다.
김 처장은 특히 진경준 전 검사장 논란 이후 고위 공직자의 재산형성과정을 엄격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공무원들이 재산을 등록할 때 문제가 되는 부동산, 비상장주식, 스톡옵션 등을 미리 소명하자는 것”이라며 “특정재산에 대한 재산형성과정을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고 재산 은닉이 의심될 경우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철저히 조사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에는 1급 이상 공직자에게만 재산형성과정을 소명하도록 했지만, 앞으로는 모든 재산 등록의무자의 재산증식이 의심스러운 경우 소명하도록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산등록대상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대민 업무와 무관한 현장 실무직 공무원은 제외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무원의 전문성 강화도 강조했다. “그동안 지적받아온 공무원의 전문성과 정책역량 저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문직 공무원 제도를 3월부터 산업부 국제통상업무, 금융위 금융감독업무, 통일부 남북회담업무, 국민안전처 재난관리업무 등 6개 부처에서 시범 실시할 계획”이라며 “예컨대 국제통상분야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서는 국제통상 분야 안의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보고 종합적인 시각을 갖춘 전문가가 되도록 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문직 공무원은 보수를 더 챙겨주고 승진을 배려하는 등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라며 “물론 전문직 공무원이 되기 싫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전문가의 길을 가려는 공무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재해보상제도 개편과 관련해서는 “위험근무순직 범위도 넓혀주고, 순직보상금 액수도 높일 것”이라며 “말벌에 쏘이거나 나무 위 고양이를 구하려다 순직하신 분들도 있다. 늘 위험이 수반되는 업무인데 사고가 나면 유족들이 평생 사는데 지장 없도록 정부가 확실히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 김 처장은 공직 생활 30년 대부분을 인사 관련 업무만 담당해온, 자타가 공인하는 공직 사회 최고의 인사 전문가다. 머쓱해질 때도 많다. 인사 서류를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서류상으로만 아는데도 너무 친숙해 인사를 건네면 상대는 모르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그런 그가 바라는 공직사회 인재상은 단 하나다. 바로 국가와 국민에 대해 봉사와 헌신할 자세를 갖춘 인재다. 김 처장은 “시대 상황이 변함에 따라 인재상은 달라진다. 과거엔 우직하게 일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면 지금은 창조적인 인재가 필요하다. 또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해서는 감수성이 뛰어나고 통합적인 사고를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민간과 달리 공직 사회는 변치 않는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무원이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단 정신을 갖춰야 한다. 공무원이 되겠다면 헌신하겠다는 생각이 가장 기본이 돼야 한다”고 했다.
김 처장은 “과거엔 공무원을 천직으로 알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그냥 밥벌이로 생각하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연간 뽑는 공무원 수는 대략 5만명 정도인데, 시험 준비를 하는 이들만 32만명에 달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시험 준비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이전보다 봉사와 희생이라는 공직 가치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공무원 인사정책 사령탑으로서 공무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세월호 이후 공직사회가 계속 언론과 국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코너에 몰리고 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공무원들의 사기가 높고 활력이 넘쳐야 정부가 잘 돌아가고 국민들에 대한 행정서비스가 좋아집니다. 그래야만 사회 전반적인 활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컨대 종을 부리는데 채찍질만 하면 결국 그 집도 잘되지 않습니다. 종들이 신바람 나게 해갈 수 있도록 언론이나 국민들이 잘하는 건 잘한다고 칭찬도 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김 처장은 그러면서 “저희들이 잘못해서 그렇긴 한데…”라면서도 “잘하는 공무원들도 많은데 그에 대한 칭찬은 인색하고 일부 공무원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싸잡아 비판을 하다 보니 공직 사회가 너무 위축돼있다”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