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논란인 '낙태죄'와 관련해 내년에 임신 중절 실태 조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현황과 원인 등을 파악해 관련 논의를 더 진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최근 '낙태죄 폐지' 청원 글이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것과 관련해 공식 답변을 내놨다.
조 수석은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며 "실태조사 재개와 헌재 위헌심판 진행으로 사회적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입법부에서도 함께 고민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네티즌 10명 중 6명은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거세 온라인에서도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네이버 법률과 네이버 지식iN이 지난 5일부터 1주일간 낙태죄를 주제로 존폐 여부를 조사를 한 결과, 네티즌 62.7%(8,778명)가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37.3%(5,227명)는 "낙태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죄는 지었지만 벌은 유예…낙태죄 처벌도 모호
현행법에 따라 낙태는 '예외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불법이다. 모자보건법에서는 예외 경우로 강간이나 정신장애, 전염성 질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산모의 건강이 우려될 때만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형법 제269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시술을 한 의료인 역시 형법 270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러한 처벌조항에도 한국은 OECD국가 중 낙태율 1위다. 법과 현실의 간극이 상당히 크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대한 의견차는 뚜렷하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낙태죄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과, 낙태죄는 유지하되 이를 예방하는 교육 등 여건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 나뉜다.
법정에서도 낙태죄를 바라보는 시각이 제각각이다. 지난 7월 41차례 낙태수술을 한 의사가 징역형과 자격정지형의 선고를 유예 받았다. 대전지법 형사2부(김양희 부장판사)는 "여성의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 또한 가볍게 볼 수 없다"며 판결 이유를 밝혔다.
2013년 6월에도 100명 이상을 낙태한 혐의로 기소된 의사들이 2심에서 원심대로 형의 선고를 유예 받았다. 대전지방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정완)는 당시 "태아의 생명보호를 위해 낙태를 금지하는 형법의 규범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며 "사실상 낙태가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상 피고인들에게만 무거운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런 판례는 "죄는 있지만 여성 결정권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당시 이런 판결들은 낙태죄 찬성론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 정부가 낙태수술을 한 의사의 처벌을 강화하려고 했을 때는 정반대로 낙태죄 반대론자들의 반발에 부딪쳐 처벌이 무산됐다.
◆헌재 5년 만에 다시 심리, 합헌결정 뒤집힐 수도
낙태죄를 폐지하려면 무엇보다 형법 관련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 지난 2012년 이 조항에 대해 소원심판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헌법재판관들 의견은 정확히 4대 4로 나뉘었다.
찬성하는 측은 "태아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돼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또 "낙태를 처벌하지 않거나 형벌보다 가벼운 제재를 가하면 낙태가 더욱 만연하게 돼 자기낙태죄 조항의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낙태죄 규정이 현재는 거의 사문화됐다"며,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태아의 생명보호라는 공익은 더 이상 달성되기 어렵다"고 봤다.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팽팽한 입장차에도 위헌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낙태죄는 결국 합헌 결정이 났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5년 만에 또다시 위헌 여부를 심리한다.
헌재는 지난 2월8일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이 위헌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또다시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진성 소장의 취임으로 9인 체제로 복귀한 헌재가 이번에는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 소장은 지난 22일 인사청문회에서 "일정 기간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비현실적인 성교육부터 바뀌어야" 목소리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와 뉴질랜드, 영국, 이스라엘, 일본, 칠레 등 10개국을 제외한 25개국에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본인 요청에 따라 낙태가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을 여성이 가져야 할 '근본적인 권리'로 보고 있다.
지난해 폴란드에서는 정부가 낙태 금지법을 추진하려다 수만 명의 여성이 검은 옷을 입고 파업시위를 펼쳐 결국 철회하기도 했다.
이처럼 해외에서도 낙태에 대한 시각은 극과 극이다. 법조계는 앞으로 헌재 심리 결과에 따라 낙태죄가 폐지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간통죄가 폐지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헌재가 어떤 판결을 내리더라도 찬반 논리가 극명히 갈리는 만큼 사회적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낙태죄 논란을 계기로 한국의 성교육 실태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낙태 시술이 임산부에게 위험한 시술이지만, 피임법이나 낙태 과정을 그만큼 모르는 현실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특히 첫 성관계 연령이 낮아지고 있지만 성교육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미미하다. 때문에 낙태법 논란 이전에 현실적인 성교육부터 차분히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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