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檢, 양승태·박병대 '일선 재판' 보고받은 정황 포착

백인성 (변호사) 기자
2018.07.25 19:50

[the L] (종합) 양승태 등 압수수색영장 또 기각…법원에 가로막힌 수사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자택을 나서고 있다. 이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을 수사 중인 검찰이 임 전 차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2018.7.2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사법연수원 16기)의 USB(이동식저장장치)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 '윗선'이 하급심 재판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보고받은 정황을 포착했다. 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조사 또는 수사에 대한 대응방안을 담은 문건도 발견됐다.

한편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 등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또 다시 기각했다. 검찰의 행보가 수사 대상자인 법원에 의해 가로막힌 셈이다.

◇'하급심 재판 보고 문건' 임종헌 직접 작성···'윗선'은 둘뿐

26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주 공용서류손상·공무상비밀누설·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임 전 차장의 USB에서 8000여건의 법원행정처 문건을 찾아냈다. 여기에는 대법원이 검찰에 제출한 410개 의혹 관련 문건 이외에도 사법행정권 남용 등의 혐의가 의심되는 자료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특히 USB에는 일선법원이 심리하는 하급심 재판의 상세내용을 정리한 보고용 문건도 담겨 있었다. 이 보고용 문건들 가운데 상당수가 임 전 차장의 명의로 작성됐다. 당시 임 전 차장이 보고할 만한 '윗선'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 둘 뿐이었다.

이 문건에는 당시 사건기록을 열람했던 판사 외엔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재판예규 제1306호(중요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에 따르면 해당 재판부 주무과장은 법관 등의 직무상 불법행위에 대한 형사사건 등에 대해서만 법원행정처에 보고하게 돼 있다. 그러나 보고자가 판사가 아닌 일반 법원 직원이어서 그 내용은 공소사실 요지 등 간략한 요약 보고에 그친다. 대법원 관계자는 "공소사실의 요지를 간략히 보고할 뿐 증거와 영장 등 상세내용을 함께 첨부해 보고하는 예는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사건기록을 열람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은 법원행정처 보고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임 전 차장이 이 같은 내용으로 보고용 문건을 작성했다는 것은 그가 비공식적으로 일선 법관을 통해 재판의 세부내용에 대한 정보를 취득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 임 전 차장의 USB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법원의 자체 조사와 당시 예상됐던 검찰의 수사에 대비해 관련자들의 진술전략과 주요 소명내용 등 대응 방안을 정리한 문건도 담겨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법원행정처가 소속 현직 판사들에 대해 말 맞추기 등 증거인멸을 요구하려했던 셈이다.

◇양승태 등 압수수색영장 또 기각…법원에 가로막힌 수사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이날 임 전 차장이 고문으로 있던 서울 강남구 소재 투자회사 A인베스트먼트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임 전 차장이 은닉했을지 모를 법원행정처 재직 시절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검찰은 임 전 차장의 변호사 사무실도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이날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김모 판사 등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재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검찰은 또 이들의 법원 이메일 계정 내 이메일에 대해서도 당사자들이 훼손, 변경 또는 삭제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영장도 청구했으나 법원은 역시 기각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주 이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으나 법원은 "주거의 평온을 깰 정도의 소명에 이르지 못했다"며 기각한 바 있다. 법원은 이날 압수수색영장 기각 사유에 대해 "피의자 양승태, 박병대가 지시 또는 보고 등 피의자 임종헌과 공모하였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적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실장과 김모 판사에 대한 영장의 경우 지난주 청구한 영장과 별다를 게 없다며 역시 기각됐다. 통상 압수수색영장의 발부율이 90%를 웃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에 영장을 재청구하면서 관련자들의 범죄혐의를 다수 추가했고, 소명자료도 임 전 차장의 USB에서 나온 '수사 대응자료', '원장·처장 보고자료' 등 수천건 파일 등이 다수 보강된 상태였다"고 했다.

검찰은 이날 법원행정처가 '기획조정실 자료를 제외한 사법정책실, 사법지원실, 인사자료, 재판자료, 정모 판사 등 일선판사 자료, 이메일, 메신저 등을 제출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6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자기장을 이용해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삭제하는 '디가우징'된 양 전 대법원과 박 전 처장의 하드디스크는 완전히 훼손돼 복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한편 대법원은 "컴퓨터 저장장치(하드디스크)에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관련성이 없거나 공무상 비밀이 담겨있는 파일 등이 대량으로 포함돼 있어 이 파일에 대한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당시의 상황에서 제공은 곤란하다"며 "수사의 필요성이나 관련성이 있는 컴퓨터 저장장치 내의 정보 제공을 할 것이며 최종통보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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