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나 살아있는데"…살아도 죽은 '유령 국민들'

박보희 기자
2018.08.03 04:00

[유령'이 된 사람들]① 실종자 年 1700명 사망처리…이 땅을 떠도는 '법적 유령들'

[편집자주] 출생부터 사망까지 모든 과정이 등록·관리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이같은 관리체계는 교육과 의료, 복지 등 다양한 시스템과 맞물려 운용된다. 그럼에도 이같은 시스템에 편입되지 못한 채 '버려진' 이들이 있다. 이름하여 '유령 국민'이다.

#오랫동안 노숙 생활을 한 A씨는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했다. 하지만 그제야 자신에 대해 오래 전 실종선고가 났다는 걸 알게 됐다. 이는 법적으로 사망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 때문에 그는 수급 신청을 할 수가 없었다. A씨는 실종선고 취소 소송을 통해 16년만에야 다시 '살아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기가 찬 건 A씨가 실종선고를 받은 뒤에도 생필품 등을 훔치다 걸려 재판을 받고 교도소까지 드나들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그가 실종선고 상태라고 알려주지 않았고, 사망자 신분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정부도, 사법부도 마찬가지였다.

#장애를 안고 태어난 B군은 출생신고도 안 된 채 버려졌다. 경찰에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진 B군은 열살이 될 때까지 병원에서 지냈다. 병원의 사회복지사는 입원치료가 필요 없어진 B군을 장애아동시설로 옮기려고 했지만 시설은 거부했다. 신분이 없는 아이를 받아줄 순 없다는 이유였다. 그때까지도 B군은 출생신고조차 안 된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줄곧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신분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연은 다양하다. 처음부터 출생신고가 안 된 이들부터 살아있는데도 실종선고를 받아 사망자로 처리된 이들까지···. 문제는 이들이 신분이 없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지원조차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건강보험 적용도 받을 수 없다.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른바 '유령국민'들이다.

◇매년 실종자 1700명 '사망자' 처리

27일 대법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10년간 법원에서 실종선고가 내려져 사실상 '사망자'로 처리된 사람은 총 1만7428명에 달했다. 연평균 약 1700명 꼴이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매해 서울에서만 500여명이 실종선고를 받는다"며 "일본 법원에서 온 사람이 이 수치를 듣고 깜짝 놀라는 것을 보고 외국과 비교해봤더니 유독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사망 처리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실종선고는 오랜기간 생사를 확인할 수 없을 경우 일정한 요건에 따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는 절차다. 민법 제27조는 5년간 생사가 분명하지 않을 경우 법원을 통해 실종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통상 연락이 닿지 않는 행방불명의 가족 때문에 상속 등의 문제가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을 때 가족들이 실종선고 신청을 낸다.

가족과 연락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이 실종선고를 내리지는 않는다. 의료, 금융, 범죄, 출입국, 통신 기록 등을 살펴 최근 5년 동안 살아있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때 최종적으로 실종선고를 내린다.

문제는 법원이 모든 기록을 다 확인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A씨가 실종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감옥까지 다녀왔음에도 실종취소 선고가 내려지지 않은 게 그 방증이다. 우리나라의 실종자 선고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출생신고 안 돼 '성본창설'까지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출생신고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이들이 있다. 장애 등의 이유로 일찍 버려졌거나, 부모가 사정 때문에 출생신고를 못한 경우다.

출생신고가 안 돼 있고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는 가족관계등록부(호적)가 없기 때문에 뒤늦게 신분을 얻으려면 스스로 성씨를 만들어야 한다. 이른바 '성본창설'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매해 성본 관련 사건은 4000여건 수준으로 지난해 처리된 사건만 3989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부모를 알 수 없어 성본을 창설한 경우다.

행정상의 실수 때문에 '무적자'(無籍者)로 살아온 경우도 있다. 30대인 C씨는 4년 전 여권을 만들기 위해 구청을 찾았다가 "출생신고가 안 돼 있어 가족관계등록부가 없기 때문에 여권을 만들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교를 다녔고 주민세 납부도 해왔지만, 가족관계등록부만 없었다. 구청 직원은 "출생신고 과정에서 서류가 누락된 것 같다"고 했다. 실수한 건 관청이었지만, 수습은 C씨의 몫이었다.

김도희 서울사회공익법센터 변호사는 "정신질환이나 장애 등을 이유로 오랜 기간 시설에서 생활한 사람들이나 노숙인들 중에서 신분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신분을 되찾으려면 실종선고 취소 청구, 성본창설 신청,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신청, 주민등록 신고, 친자관계 존부확인청구, 출생신고 등 기본적으로 3개 이상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시도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 처한 이들 중엔 기본적인 생활 유지조차 힘든 이들이 많아 신분 회복을 위한 정부 차원의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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