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 법의학자에게 업무환경과 처우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목소리에는 무관심과 냉소가 깔려 있었다. 그는 “(법의학자) 수를 늘리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수없이 나왔지만 바뀐 것이 없다”며 “더는 기대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법의학의 고사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0년 전부터 국정감사 때마다 인력난과 열악한 처우 문제가 단골로 제기 됐지만 개선은커녕 더욱 심화 됐다.
현재 전국에서 의사 출신 법의학 전공생은 단 3명뿐이다. 앞으로 부검의가 될 예비 법의학자가 3명밖에 없단 얘기다. 지원자가 없으니 의대 내 법의학 교실도 줄어든다. 전국 41개 의대 중 법의학 교실이 있는 곳은 10곳, 법의학 교수는 16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가톨릭대와 건국대는 최근 유일한 법의학 교수가 은퇴하면서 병리학 교수가 겸임한다.
당장 부검의가 필요한 현장에선 문제가 더 심각하다. 국내 부검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부검의는 32명으로 정원 53명도 채우지 못했다. 부검의는 부족한데 부검 의뢰 건수는 2016년 6338건에서 지난해 9164건으로 늘었다. 업무 강도가 그만큼 더 세졌다.
일은 힘들어지고 있지만 법의관의 벌이는 일반의사에 비해 형편없다. 법의학계에 따르면 국과수 법의관의 연봉은 경력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6000만~6500만원 정도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전국 의사 평균 연봉인 1억5600만원(2017년 기준)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부검은 ‘망자의 마지막 말’이라는 얘기가 있다. 억울한 죽음 앞에서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부검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발단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도 부검에서 밝혀졌다.
현재 국내에서는 연간 약 3만건 변사가 발생하는데 부검이 이뤄지는 7000~8000건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2만건 이상은 끝내 죽음의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다. 지금 추세라면 국내 법의학이 고사하는 건 시간문제다. 더 늦기 전에 법의학자의 처우와 업무환경 개선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