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문 닫은 탑골공원…배 곯는 노인들

정경훈 기자
2020.02.22 06:00
폐쇄 이튿날인 21일 오전 9시30분쯤 탑골공원. 문이 닫혀있다. 폐쇄 전 같은 시간에는 노인들이 있을 시간이지만 공원 앞에는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사진=정경훈 기자

종로구가 지난 19일 '코로나19 감염증' 확산 예방 차원에서 폐쇄한 탑골공원. 21일 오전 공원 안에서는 노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전 8시30분이면 길을 따라 열리던 장기판도 열리지 않았다.

사람 한산한 탑골공원 앞, '노인'도 '장기판'도 안 보여
21일 탑골공원 삼일문에 붙어 있는 폐쇄 안내문 /사진=정경훈 기자

21일 오전 탑골공원 '삼일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문에는 '코로나19 감염증 예방을 위해 공원 이용을 중단한다'는 종로구 알림이 붙어있었다. 폐쇄 기간은 이달 20일부터 별도 조치시까지. 몇몇 노인들은 폐쇄 소식을 모르고 찾았다가 알림을 읽고 "그럼 어디로 가냐"며 수군거렸다.

삼일문 오른편, 할아버지들이 항상 지키던 '대마도 반환 촉구' 서명 탁자도 빈 채 태극기만 휘날렸다. 간이 의자는 아예 엎어두었다. 삼일문 잠김 상태를 확인하러 온 최찬규 탑골공원 관리소장(60)은 "다시 열라고 하는 노인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좀 줄긴 했지만 아직 노인이 모이긴 한다"며 "폐쇄 후 인근 종묘 공원 쪽으로 가는 분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삼일문 왼쪽으로 가면 뻗어 있는 인도부터 뒷길까지 늘어선 '장기판'도 사라졌다. 듬성듬성 놓여 있던 노숙인들 짐도 보이지 않았다. 3년 전부터 이곳에 장기를 두러 오는 은평구 주민 서모씨(65)는 "코로나 걱정은 되지만 오던 습관이 있어 왔다"며 "보통 아침 8시 반부터 열리던 장기판도 당분간 없을 것"이라 말했다.

21일 오전 탑골공원 창고에 보관중인 장기. 장기를 자주하는 서모씨(65)는 "종로구청 방침으로 '코로나19'가 잦아들 때까지 꺼내지 못하도록 됐다"고 말했다. /사진=정경훈 기자

서씨는 "종로구청이 코로나가 잦아들 때까지 창고 장기를 꺼내지 말아달라는 방침을 내렸다"고 전했다. 서씨와 함께 찾은 낙원상가 건물 창고에는 구청이 최근 새로 마련해준 장기판과 의자 등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오는 사람이 줄긴 했다"며 "구청 방침이 바뀔 때까지 꺼내지 않겠지만 심심해졌다"고 아쉬워했다.

창고 밖으로 나가니 냉면집, 정육점, 이발소 등이 자리잡은 탑골공원 뒤 골목이 보였다. 근처 이발소를 운영하는 선모씨(78)는 "하루 100명 오는데 오늘 오전에는 6~7명밖에 안 왔다"고 말했다. 폐지처리소에서 일하는 박모씨(60)는 "오는 분들이 약간 줄긴 했다"며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어르신들 안 모이는 게 좋을텐데 갈 곳 없는 분들이 많아 큰일"이라 걱정했다.

"밥 먹으러" 온 노인으로 붐비는 공원 뒤…곧 무료급식 중단 소식에 발만 동동

그러나 공원 뒷쪽의 풍경은 달랐다. "갈 곳 없어서" "급식 먹으러" 노인들은 무료급식소가 있는 탑골공원 뒷길에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노인 숫자는 오전 11시가 넘자 삼일문 오른쪽 공원 담장 벽을 따라 긴 줄을 이룰 정도로 불어났다. 마스크를 쓴 노인들은 곧 있을 무료급식소 임시 폐쇄 소식으로 웅성이고 있었다.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는 23일부터 코로나19 확산이 멎을 때까지 무료 급식을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급식소 앞은 출입문 옆 붙은 '급식 중단 예정' 알림을 보고 "이제 어떻게 밥 먹냐"는 노인들로 떠들썩했다. 10년째 이곳을 찾는 김모씨(69)는 "여기 닫으면 청량리를 가봐야 하나" 하며 걱정을 드러냈다. "코로나 때문이냐"는 노인들을 달래는 급식소 직원들 표정엔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21일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직원이 노인들 전화번호를 받고 있다. 급식소 잠정 폐쇄가 종료되면 다시 연락하기 위함이다. /사진=정경훈 기자

강소윤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 총무는 "노인들이 모이는 것을 방지해야 해서 급식을 간편식 배급으로 바꿀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갑작스런 코로나에 저희도 구청도 발만 구르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급식소는 배급할 때 노인 전화번호를 받아 운영을 재개하면 문자 알림을 준다는 입장이다. 직원들은 차례로 줄 서 있는 노인들에게 "식사 전 전화번호를 써달라"고 당부했다. 노인들은 식사 전 후로 장부에 전화번호를 적고 손소독제를 발랐다.

한 직원은 "일부 형편이 좋은데 놀러오시는 분들 제외하고 이곳에서밖에 밥을 못드시는 분들이 많다"며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급식소 운영이 멈춰도 노인분들이 거주지역 동사무소에 요청하면 음식, 마스크 등 물품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렸다. 이 관계자는 "뒷길은 상권 때문에 폐쇄할 수 없다"며 "구청 직원들이 탑골공원, 종묘 등에 나가 모임 자제를 부탁드리거나 마스크 배부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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