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 처음 가던 날…아이들은 1등으로 줄을 섰다[인류애 충전소]

남형도 기자
2022.07.02 08:00

"한 달 약속 잘 지키면, 놀이공원 데려갈게"…학대 피해 아이들과 약속 지키고, 옷·신발도 사준,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의 좋은 어른들

[편집자주]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지난달 중순 무렵, 놀이공원에 처음 간 그룹홈의 다섯 아이들. 모두 학대 피해를 입은 아동들이다. 한 달 간 약속을 잘 지키면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겠다고,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에서 약속했었다. 아이들은 약속을 잘 지켰고, 즐겁게 놀았고, 이렇게 기념 사진도 찍었다. 아이들 보호를 위해 사진에 블러나 스케치 등 여러 처리를 했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다섯 명의 아이들은 놀이공원을 못 가봤다고 했다. 놀이공원은커녕, 가정에서 학대 피해를 겪은 아이들이었다. 수시로 맞고, 발가벗겨져 내쫓기고, 무방비로 방치되고, 무시 당하거나 찍어눌렸다. 벼랑 끝에 몰린 아이들은, 이제야 돌봄을 받으며 한집(그룹홈)에 함께 살고 있었다. 고스란히 상처가 남은 채로.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아이들과 문득 약속을 했다.

"선생님하고 한 달간 약속을 잘 지키면 놀이공원에 데려갈게. 어때?"

그러자 아이들은 노트를 가져와, 지켜야 할 약속을 열심히 썼다. 약속 잘 지키기, 거짓말하면 고백하기, 친구들과 나눠 먹기, 저녁에 양치 잘하기 등. 끝으론 동그라미 30개를 그렸다. 하루 잘 지킬 때마다 동그라미를 긋겠다는, 귀여운 각오였다.

30일이 짧았던 아이들은 약속을 잘 지켰다. 공 대표와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도 어른답게 약속을 지켰다.

그룹홈의 아이들이 놀이공원에 가기 위해 열심히 적었던 여덟 개의 약속들. 우리가 이 아이들을 위해 꼭 지켜야 할 약속은 몇 개나 될까./사진=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

그렇게 지난달 중순 무렵, 아이들은 태어나 처음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놀이기구를 즐겁게 타고, 퍼레이드도 보고, 맛난 것도 먹었다. 각자 갖고 싶은 옷을 사라고, 30만 원이 담긴 선불카드도 줬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와 회원들이 '십시일만(열 명이 만 원씩 보탠다는 말로 쓴단다)' 마음을 모은 거였다.

다음날 그룹홈 원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자기들에겐 큰 행사 같은 거였다고요. 되게 즐거웠다고요."

아이들과 놀이공원서 놀고 온 이수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리의 마음도 그랬다. 그 하루가 너무 즐거웠다고, 아이들을 또 보고 싶다고. 그 역시 다섯 살 아이의 엄마라고 했다. 이 대리와 지난달 30일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에서 만나 그날의 이야기를 들었다.

1등으로 줄서 있던 아이들…"소시지 먹고 싶어요" 그 말도 힘들어서
놀이공원에 가서 먹었던 피자. 재밌게 놀았던 사진이 많지만, 아이들 보호를 위해 맛있게 먹었던 음식 사진으로 대신하는 것./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형도 : 놀이공원에 가겠단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셨어요. 그게 좋더라고요.

수진 : 꼭 지키고 싶었어요. 약속이 원래 그렇지만, 아이들과 약속한 건 더 지켜야 해요. 3월에 경남 김해의 학대 피해 아동과 만나서 놀았거든요. 또 언제 오시느냐고 물어서 "6월 말에 갈게", 했더니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헤어질 때 제가 기차 탈 때까지 손 흔들고 있고요. 추우니까 빨리 가라는 데도요.

형도 : 아이들은 그 시간이 좋았기에 기억하는 거지요. 놀이공원 가는 날도 기억해 기다렸을 거고요.

수진 : 맞아요. 놀이공원 가던 날, 아이들이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소파에 앉아 있었대요. '아기새' 마냥 주먹밥을 먹고 개장 1시간 반 전에 도착했다고요. 도착해서 원장님께 "어디세요?" 전화했더니 맨 앞에 있더라고요. 1등으로 온 거지요.

형도 : 제일 먼저 들어가고 싶었나 봐요. 가서는 즐겁게 잘 놀던가요.

수진 : 다른 생각 안 하고 '얘네랑 오늘 재밌게 놀아야지' 싶었어요. 퍼레이드를 하는데 처음엔 쭈뼛거리는 거예요. 그러더니 손도 흔들고, 사진도 찍고요. 놀이공원 가면 머리띠 쓰잖아요, 이것저것 고르며 써보고요. 피자랑 분식도 맛있게 먹었어요. 마음 아팠던 건…실컷 놀았으면 목마를 텐데 말을 안 하더라고요.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이 먹었던 간식./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형도 : 아마도… 못된 어른들 눈치를 많이 봐야 집에서 살았겠지요. 짐작이 가네요.

수진 : 그렇지요. 그래서 제가 "목마르네, 우리 뭐 좀 마시자" 했더니 벌컥벌컥 마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이제야 좀 살겠네!"라고 하더라고요. 진작 얘기 좀 하지 싶었지요.

형도 : 음료가 뭐라고 그러나요. 속상하네요.

수진 : 소시지도 애들이 되게 좋아하는데 사달라고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좀 친해지고 마음을 여니까 "저 소시지 먹고 싶어요",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그러더라고요. 예전에 경남 학대 피해 아이들과도 음료수 4병을 먹었더니 "너무 많이 나온 것 아니에요?"라고 걱정하는 거예요. 그런 걱정을 합니다, 아이들이요.

그날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한 말도, "감사합니다"였단다. 놀이공원 데려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맛있는 것 먹으며 감사하다고. 그래서 이 대리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야, 그만해. 윙크 한 번이면 충분해." 그 말에 아이들 웃음이 터졌다.

브랜드 옷이든 보세 옷이든, 입고픈 것 사 입으라고…엄마 회원들이 모아준 150만 원
낡은 신발을 신고 있는 게 속상해서, 입고 싶은 옷 골라서 사 입으라고 준 기프트 카드. 한 아이당 30만원씩, 원하는 옷과 신발을 사입을 수 있게끔 선물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마음을 모았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그중 어떤 아이는 알몸으로 집에서 쫓겨났다. 놀이공원에 온 어떤 아이는 낡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룹홈 운영비(정부 지원)가 턱없이 부족해, 아이들 옷을 얻어 입히기도 하고 그랬다. 학대피해아동쉼터 특성상 공개되기도 어려워, 후원 등 지원도 어렵다. 그게 맘 아팠던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옷과 신발도 사주기로 했다.

형도 : 옷 사 입을 수 있게 해준 것도 참 좋네요. 한창 예민할 시기인데, 누군가 입던 옷은 상처일 거예요.

수진 : 그날도 아이가 낡은 신발 신고 온 걸 보니 속상하더라고요. 가끔 깨끗하다며 입던 것 주시겠단 문의도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쓰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골라야지요. 얘네가 사춘기잖아요. 큰 애들은 브랜드 옷 입고 싶어할 거고, 더 어린 애들은 공주 옷 입고 싶을 거고요. 명품 옷 사주자는 것도 아니고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카페에 달린 댓글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형도 : 그게 맘 아팠던 회원분들이 마음을 모은 거고요.

수진 : 다섯 아이에게, 한 아이당 30만 원씩 쓸 수 있는 선불카드를 줬어요. 협회가 75만 원을, 나머지 절반인 75만 원은 회원 75명이 1만 원씩 냈죠. 편하게 쓸 수 있고, 투명하게 공유도 되고요. 더 보내고 싶다고 하셔서, 말린 회원분들도 있었어요(웃음).

형도 : 참 고마운 마음이에요. 어쩌면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인데,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그 마음이 어떤 걸까요?

수진 : 아이들한테는 이유가 없는 거지요. 그냥 아이들이잖아요. 학대 피해를 겪었지만,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니고요. 어떤 아이는 평범하게 사랑받는데, 겪지 않아도 될 아이도 있고요. 아이들은 잘못이 없어요. 그런 마음이신 것 같아요.

형도 : 놀이공원을 가고, 필요한 옷을 사 입고, 그런 것들까지 정부 지원으로 섬세히 챙겨줬으면 좋겠어요.

수진 : 자주는 아니더라도요. 주말마다 부모님과 체험학습 가고, 바다에 가고 그런 여가 생활이 되게 필요할 것 같다고 느꼈어요. 바다에 못 가봐서 가고 싶단 아이들도 있었고요. 저희 아이도 물놀이만 다녀와도 너무 좋았다고 하거든요. 여느 아이들과 똑같아요, 이 아이들도요.

아이가 사고 싶다고 해서 들어간 신발 매장에 걸려 있는 신발들./사진=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에필로그(epilogue).

한 아이가 핸드폰 케이스가 갖고 싶다고 했다. 이 대리가 사주러 갔더니 아이가 물었다.

"선생님, 이거 되게 비싼데요. 만원이 넘어요."(아이)

"비싼 거 사줄 테니까 나중에 선생님이 지팡이 짚고, 틀니 끼고 그럴 때 갚아!"(이 대리)

피식 웃더니 아이가 또 물었다.

"그런데 왜 저희한테 잘해주세요?"

그래서 그가 이렇게 답했다.

"잘해주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거야. 너희는 원래 당연히 받아야 하는 애들이야. 부모님이 못 해주시니, 우리가 대신해서 해주는 것뿐이야. 너네는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 그것만 해주면 돼."

그러자 아이가 표정이 편해지더니 깔깔깔 웃었다. 모처럼, 아이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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