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 충전소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구석구석 다니며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일들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힘들어 무너질 것 같은 날에 이리로 와서 쉬세요. 쪼그라 들었던 좋은 마음을 꺼내어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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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봤을 광경이었다. 좁은 골목을 누비며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이 폐지를 줍는 일 말이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쓰레기를 향해 다가가고. 허릴 몇 번이고 숙여 두툼한 상자를 해체하고 수레에 척척 싣고. 그런가보다, 하고 다들 스쳐 지나가기 쉬울 때 발걸음을 멈춘 이가 있었다.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폐지 줍는 할머니를 봤다. 넘어져 있었다. 수레가 턱에 걸려 쓰러진 거였다. 차들은 얼른 비키라 재촉했다. 그는 뭔가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 뒤로 근골격계 질환을 무상으로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아파서 시름 하던 이들이 안심하고 병원에 왔다. 그리고 손수레. 순수 무게만 57kg에, 폐지를 다 실으면 100kg도 훌쩍 넘는 손수레. 취약한 어르신들의 허릴 몇 번이고 휘게 하는 그 손수레도, 좀 바꿔볼 수 없을까 생각하던 이가 있었다. 이런 대목을 좋아한다. 손수레가 무거운 거지 뭐, 어쩌겠어. 그러기가 더 편하고 쉽지 않은가. 어르신들이 끄는 수레가 너무 무겁겠어, 뭔가 바꿔볼 수 있을까
신경이 따끔거리고 사람 냄새가 짙게 느껴졌다. 대학생 샛별씨(가명)의 감각이 곤두섰다. 온몸이 통제를 벗어날 듯한 불안이 엄습했다. 지난 1월부터 심해진 불안장애. 증상이 시작되면 멈추기 힘들다는 걸 알았다. 하필 사람 많은 지하철 안이었고 병원에 가던 길이었다. 한 정거장을 남기고 바삐 내려야 했다. 샛별씨는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조언을 구하려 했다. 목소릴 듣자마자 불안장애 증상(공황)이 더 심해졌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숨쉬기 버거워졌다. 아무 말도 못 하고 헉헉거리고만 있었다. "일단 근처 벤치에 가서 앉아 있어." 사촌 언니 조언대로 힘겹게 몸을 옮겼다. 오가는 많은 이들 사이에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런 일은 아주 처음이었다. 짧고 가쁜 숨에 의지하면서도 행인들 시선이 너무나 두려웠다. 꾸미지도 않고 누추한 것 같아 더 그랬다. 모든 이들이 그를 보는 것 같았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고 있을 때였다. 낯선 이가
첨엔 마냥 사나운 개인 줄만 알았다고 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짖어서였다. 지난해 12월 초, 소설가인 유재연씨가 앞집 누렁이를 본 첫인상이 그랬단다. 제주 함덕에서 와흘로 이사 가서 만난, 휑한 공터에서 사는 개였다.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목줄에 묶여 있었기에. 털 빛깔은 밤색에 발끝만 하얘서 양말을 신은 듯 보였다. 개 이름은 다복이었다. 2살이었고, 홀로 사는 할아버지가 주인이었다. "그 개가 복이 많지. 그래서 다복(多福)이라고 지었어." 할아버지는 그리 말했다. 다복이는 재연씨를 보며 컹컹 짖고 또 으르렁거렸다. 네 발의 이웃과 친해져 보려고, 그는 육포를 호주머니에 지참하고 다녔다. 그걸로도 잘 꼬셔지지 않았다. 다복이는 계속 크릉크릉,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재연씨가 "개가 잘생겼다"고 칭찬하자, 할아버지는 허허 웃었다. 가끔 양갱과 사탕을 사다 드리며 할아버지와도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개가 여태껏 산책을 한 번도 안 했다는 거였다
지난 8월 5일. 8개월 아기의 자그마한 심장이 멈췄다. 이름은 이태윤. 모습 태(態), 진실로 윤(允). 이름을 받았을 때 가장 세 보여서, 이거다 싶어서 지어줬었던. 양대혈관 우심실 기시증(DORV)이란 선천성 심장병. 대동맥과 폐동맥의 자리가 바뀌어 있던 병. 그러느라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아기. 소아 중환자실 병동에서 많은 이들 사랑을 받으며 회복되길 바라고 바랐던 태윤이. 병원과 집 사이 왕복 4시간 거리. 그 길을 매일 버스 타며 중환자실을 오갔던 태윤이 엄마는, 그날 경기도 시흥을 들어갈 무렵 긴급 전화를 받았다. 태윤이가 심폐소생술(CPR) 중이에요, 어머니. 빨리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부리나케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정지한 심장을 살리려던 절박한 몸짓들. 의료진이 차트에 'CPR 1시간째 시행 중'이라고 적는 걸 본 엄마의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엄마는 생각했다. 이게 태윤이의 선택이구나, 홀로 외롭게 싸우고 있구나, 이젠 그만 힘들게 해야겠다고. "
희진씨 방엔 아빠 영정사진이 늘 걸려 있었다. 침대에 누우면 가장 잘 보이는 곳. 그렇게라도 자주 보고 싶어서 돌아가신 뒤 거기에 둔 거였다. 8월 29일은 희진씨에게 참 고된 날이었다. 털썩, 집에 와 묵직한 모래 자루처럼 침대에 널브러졌다. 그대로 누워 여느 날처럼 정지된 아빠 얼굴을 바라봤다. 하늘빛 사선 무늬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에, 입을 굳게 다문 무표정한 사진. 그날따라 어쩐지 다르게 보여 신경이 쓰였다고 했다. "유독 안 좋은 표정으로 저를 보고 계시더라고요. 혹시 하늘나라에서도 편찮으신가. 아님, 제 걱정에 잠을 못 이루시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요. 아빠 사진이 웃고 계셨으면 싶었어요. 그걸 걸고 얼굴 보며 하염없이 대화하고요. 그럼 너무 행복할 것 같았지요." 표정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몰랐다. 막연히 SNS(스레드)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리 남겼다. '울 아빠 영정사진인데 웃고 계신 모습으로 바꿔줄 수 있을까? 여기 능력자분들 많던데. 사랑하는 울 아빠. 볼
노부부가 보물처럼 품에 안고 온 건 노견이었다. 이 녀석이 탈 휠체어를 맞추러 왔다고 했다. 나이는 17살, 이름은 또또. 길바닥에 버려져 안락사될 예정이었던 강아지. 죽음을 사흘 앞두고 가족으로 맞아줬다. 또또가 3살 때였다. 또또 아빠 남준우씨는 처음엔 강아지를 꺼렸다. 5살 때 동네 개가, 그의 형을 물었던 기억 때문에. 아내와 딸은 또또를 예뻐했으나, 준우씨는 두 달쯤 거릴 두었다. 눈치를 살살 보는 또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안쓰러웠다. 너는 어쩌다 버림받았니. 말을 걸 때부터 둘은 가까워졌다. 어느 날 밤, 준우씨가 술에 취해 퇴근했을 때였다. 집에 와 탁 드러누웠을 때, 한참 반기던 또또가 배 위에 올라왔다. 준우씨가 당시를 회상했다. "아내와 딸이 저한테 오려고 하는데, 손도 못 대게 또또가 으르렁거리는 거예요(웃음). 허허, 이 녀석 봐라. 그러면서도 기분이 좋았죠. 정이 어찌나 들었는지." 그리 14년이 흘렀다. 또또의 시간은 준우씨보다 몇 배 더 빨랐다. 걸음이
지난 7월 17일, 비가 많이 쏟아지던 출근길이었다. 우중충하고 축축한 날씨에 사람이 꽉 찬 마을버스. 지연씨는 멍한 눈으로 창밖을 보며 '오늘 하루는 영혼을 빼두어야겠다'고 맘먹었다. 마을버스가 덜컹거리며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나아가던 그때였다. 기사님이 힘찬 목소리로 이리 말했다. "우회전할게요. 꽉 잡으셔요, 진짜 여기 길이 덜컹덜컹 안 좋아요." 승객들이, 일하러 가는 이들이 행여나 다칠까 봐 적막을 뚫고 외친 말 몇 마디. 그로 인해 삭막했던 버스가 삽시간에 밝고 동그란 기운으로 채워졌다. 그뿐만이 아녔다. 사람 많은 정류장에선 충분히 오래 기다려주고, 정류장마다 설명해주었다. 지연씨는 다정한 기사님 덕분에 하루가 행복했단다. 그날도 당연히 지치는 순간이 많았으나, 그때마다 기사님이 건넨 말들이 환하게 생각났다고. ━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버스 타자마자 행복해졌다━지연씨에게 이야길 듣고 궁금해졌다. 이런 버스 기사님이 있었던가. 타자마자 막 출발해 넘어질 뻔하거나, 서서
2년 전 겨울이었다. 이나씨(가명) 부부가 외출하려 현관문을 열었을 때였다. 문 앞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곱게 접힌 쪽지와 함께였다. '이게 뭘까' 하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이나씨는 꽃다발과 쪽지를 가지고 집에 다시 들어왔다. 쪽지를 펴보았더니 이리 적혀 있었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지만 그 사이로 봄 내음이 사알짝. 리모델링한 예쁜 집에 어울릴까 싶어 '아네모네' 꽃을 사보았답니다. 입주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랫집 노부부가 선물한 거였다. 이사 온 걸 축하한다며. 이나씨는 그만 눈물이 날 뻔했다. ━한 달 넘게 걸린 리모델링 공사…떡 돌리며 일일이 만났다━이 이야기를 우연히 온라인 카페에서 봤다. 이나씨가 올린 원글 제목은 이거였다. '아랫집에서 쪽지를 붙였어요.' 그걸 보자마자, 층간소음 항의 내용이겠구나 싶었다. 아랫집과 주고받는 쪽지는 보통 그런 게 되었으므로. 짐작하지 못한 전개에 뭉클해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리 따스한 이웃이라니. 글로 담고 싶어 남겼으나
지난해 12월 강원도 속초에서의 추운 겨울날. 백종우씨 부부가 하는 코코넛그루브 카페 앞. 거기서 모든 연(緣)이 시작되었다. 까만데 하얀 양말을 신은 듯한 동네 길고양이였다. 생존을 위한 많은 게 소멸하는 데다 마실 물마저 꽁꽁 얼어붙는 계절. 사람을 좋아해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고양이에게 종우씨 부부도 맘을 열었다. 체온이 서로 닿는 순간만큼은 따뜻했다. 그리 친해지고 있었다. 동네를 나란히 걷고, 자그마한 머리와 동그란 배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밭일할 때면 곁에 가만히 앉아주던 친절한 고양이. 검은 빛깔 고양이라 단순히 '검고'라 불렀다. 실은 동네 고양이를 다 그리 이름 지어 주었다. 회색 고양이면 회고, 그런 식으로. "검고야, 검고야." 익명이었던 생명은 세상에 하나뿐인 의미가 되어갔다. 몇 달이 흐른 뒤 알게 되었다. 검고가 아프단 걸. '구내염'이었다. 바이러스가 원인인데 걸리면 입안이 다 헐어버린다. 그러니 침을 질질 흘리고, 아파서 잘 먹지도 못하고, 심하면 종양
엄마 오리와 새끼 오리 12마리가, 위험천만한 차도를 건너려 하고 있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 반, 강원도 42번 국도에서였다. 자동차 전용 도로였고 평일 오후라 차가 많지 않았다. 화지씨는 1차선에서 운전하다가 멀리서 무언가 움직이는 걸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처음엔 무슨 비닐봉지가 놓여 있나,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오리가 차도를 건너려는 거였어요. 순간 당황스러웠지요." 감속하지 않았다면 오리를 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 13마리 오리 가족은 갈 방향을 잃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건너려다 멈칫. 한쪽은 중앙분리대라 큰 시멘트 벽에 막혀 있었고, 반대편 논밭으로 빠져나가려면 차도를 건너야만 했다. ━아기 오리 지치고, 엄마 오리 우왕좌왕…車 멈춰주니 1차선 건너━화지씨는, 오리들이 금방이라도 1차선으로 끼어들 것 같아 두려웠다. 2차선으로 피해 가자니, 차량이 오고 있어 낄 수도 없었다. 별수 없이 비상등을 켜고 정차한 채 조마조마, 볼 수밖에 없었다. 아기 오
"4월 11일에, 우리 학교 운동장에 김구 선생님 그림을 아주 크게 그릴 거야." 경기 화성반월고등학교 1학년 8반 교실. 때는 4월 11일이 되기 2주 전쯤. 이 반 담임인 김동은 선생님이 35명의 학생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반장인 정지우 학생은 당시 이리 생각했단다. "쌤이 그러시는 거예요. '몇 년 동안 해왔는데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그래서 애들끼리 이렇게 생각했죠. 우리가 첫 실패가 되겠구나(웃음)." 김동은 선생님 생각은 뭐였을까. 갑자기 김구 선생님 그림을, 그것도 운동장에 초대형으로 그리자니. 어떻게, 얼마나 크게 그리려 했던 것일지. 그에게 물었다. "저희 운동장 최장 길이가 60m(미터)인데요. 그림을 세로 56m, 가로는 글씨 포함해서 25m로 그리려 했어요. 물을 부어서 '음영'을 이용해 그리는 거지요." ━밸런타인데이는 알면서, 4월 11일은 아무도 몰라서요━이 사실을 안 건, 김지유 학생이 내게 메일을 보내서였다. 담임
지난해 가을이었다. 병원 병실에 종일 누워만 있던 80대 할머니 환자가 있었다. 대학교 3학년이었던 홍지윤씨는 당시 간호 실습 중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을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배웠다. 바이탈(호흡, 맥박, 체온 등) 체크, 침상 정리 등 할 수 있는 게 많진 않았다. 할머니는 지윤씨를 늘 반갑게 맞아주었다. 따뜻하게 손을 어루만져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쩐지 목소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알고 보니, 아파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말을 못 하는 환자였다. 그래서인지 병상엔 노란 노트 한 권이 있었다.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건 거기에 끼적이는 게 전부였다. 그걸로 해소가 안 될 때면, 할머니는 손짓과 발짓을 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답답함에 손으로 가슴을 탕탕, 치기도 했다. 대부분 "뭐라고요?", "못 알아듣겠어요"하고 넘기곤 했다. 지윤씨는 그걸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다. 원래 누군가에 마음을 잘 쓰는 편이었다. 어릴 적엔 길에서 나물 파는 어르신을 보면 꼭 사드리곤 했었다.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