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충격의 페놀 30톤'…"수돗물 악취" 난리난 대구[뉴스속오늘]

이영민 기자
2023.03.14 11:10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이 2021년 3월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 30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오염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뉴스1

32년 전인 1991년 3월14일. 이날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페놀 30톤이 낙동강으로 유출됐다.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는 두산전자의 페놀 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회사의 관리 소홀로 유출 사실이 8시간 뒤에야 발견되면서 페놀 30톤이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을 거쳐 대구광역시(당시 대구직할시)의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유입됐다.

이로 인해 수돗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가 이어졌다. 하지만 신고받은 취수장 측은 원인 규명도 하지 않고 염소를 다량 투입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페놀은 염료나 수지를 만들 때 쓰이는 특유의 냄새를 지닌 유기물질이다. 페놀이 염소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지는 클로로페놀은 페놀보다 악취와 독성이 더욱 심한 물질이다. 농도 1ppm을 넘으면 암, 중추신경장애 등을 일으킨다.

페놀이 인체해 유해하고 특히 임산부 등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당시 페놀 유출로 임산부 자연유산·임신중절 등 사회적 파문도 크게 일었다. 수돗물을 마신 임산부들은 "과연 아기를 낳아야 하느냐"며 분노했다.

페놀은 낙동강을 타고 흘러서 하류의 함안, 밀양, 칠서 수원지를 거쳐 부산광역시(당시 부산직할시)의 상수원에서도 검출되면서 부산, 마산을 포함한 영남 모든 지역이 페놀 파동에 휩쓸렸다.

유출 20일 만에 조업 재개…2차 사고 터진 뒤에야 일부 배상
창녕·함안보 하류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사진=뉴스1

환경 당국과 대구지검의 조사 결과 두산전자가 90년 10월부터 페놀이 다량 함유된 악성 폐수 325톤을 옥계천에 무단 방류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단속하는 환경청 직원들도 현장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고 허위 단속서류를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구시 상수도 당국도 이 사건이 발생하기 2년 전부터 수돗물 악취 신고를 여러 건 받고 실제로 수돗물에서 페놀이 검출됐는데도 제대로 원인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고로 대구지방 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 등 13명이 구속되고,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 조치되는 등 환경 사고로는 유례없는 문책 인사가 뒤따랐다.

국회에서는 진상 조사 위원회가 열렸고, 각 시민 단체는 수돗물 페놀 오염대책 시민단체 협의회를 결성했다. 두산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기도 했다.

두산전자는 조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환경처는 페놀 사고가 단순 과실일 뿐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사건 20일 만인 같은 해 4월8일 조업 재개가 허용됐다. 수출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4월22일 페놀 탱크 송출 파이프 이음새 부분이 파열되면서 또다시 페놀 원액 2톤이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고가 발생했다.

사태가 악화하자 국민의 항의 시위가 확대됐다. 2차 유출 사건으로 두산그룹 박용곤 회장이 물러나고 환경처 장관이 경질됐다.

대구 시민들은 두산 측에 정신적 피해 170억100만원(1만3475건)의 배상을 청구했다. 두산은 그중 1만1036건 10억1800만원만 배상했다. 임산부의 정신적 피해, 확인하기 어려운 물질적 피해 등 나머지는 지불하지 않았다.

'환경 문제=생존권 문제' 각인시킨 사건…"교훈 얻지 못하면 참사 반복"
/사진=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예고편 영상 갈무리

페놀 오염 사건은 마시는 물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환경문제가 곧 인간의 생존권 문제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당국은 고의로 유해 물질을 배출한 경우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비롯해 '환경개선비용부담금법', '자연환경보전법' 등을 제정했다. 또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상수원 수질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공장 설립 시의 환경 기준이 강화됐다. 행정구역에 따른 시도별 수질관리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전국 4대 강을 수계별로 관리하도록 하는 유역별 환경관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논리에 밀려 관련법 등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그 결과 3년 뒤인 1994년 1월 다시 낙동강 수원지에서 다량의 벤젠·톨루엔이 검출되고 수돗물에서 악취가 심하게 나는 물오염사건이 재현됐다. 2020년 11월에는 서울 마포구 한 아파트 온수에서 페놀이 검출되기도 했다.

환경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 사건 30주년인 2021년 3월 기자회견을 열고 "낙동강 페놀사태 발생 30년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다수의 국민들은 수돗물을 바로 마시는 걸 꺼린다"면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사고와 참사는 반복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 사건은 2020년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핵심 배경으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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