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19일 새벽 4시. 안산시 원곡동에서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새벽에 귀가하던 40대 주부가 과다 출혈과 쇼크로 사망했다. 안면과 머리 부분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손상돼 있었다.
이 주부는 퍽치기를 당해 쇠망치로 2번 가격을 받았다. 옷은 벗겨져 있었고 신체 주요부위가 훼손돼 있었다. 성폭행을 당한 것이다. 빼앗긴 금품은 현금 4만원과 금목걸이 뿐이었다.
주부를 발견한 경찰은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수사 중 비슷한 수법의 강도살인미수 사건이 7건이나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두달 전인 2004년 4월 28일 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남모씨(여, 당시 23세)도 같은 유형의 범죄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범인이 남모씨의 머리를 가격했고 피해자에게 현금 3만원을 빼앗았다. 이후 그녀의 옷을 벗기고 성추행했다. 이후 두달 만에 40대 부부를 같은 수법으로 살해한 것이다.
범인은 살인 일주일만에 또다른 범행을 저질렀다. 2000년 6월25일 새벽 2시. 안산시 와동 상가 건물 1층에서 범행 대상을 살피던 범인은 30대로 보이는 여성이 화장실로 들어가는 걸 보고 따라 들어갔다.
뒤를 밟아 쇠망치로 가격하려고 했지만 저항이 너무 거세 한방에 기절시키지 못한 범인은 달아났다.
새벽 3시 45분. 인근 동네로 장소를 옮긴 범인은 또다른 범행 대상을 찾아낸다. 범인은 한 노상에서 34살 주부를 공격해 쓰러뜨리고 현금 20만원과 수표 3장(10만원짜리)을 빼앗고는 달아났다. 앞의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돌덩이로 주부의 얼굴을 때려 쓰러뜨린 뒤 변태적인 방법으로 성추행을 했다.
목숨을 건진 피해자는 "범인이 허름한 옷차림을하고 키가 작은 20대 남성"이었다고 진술했다. 이는 범인을 잡을 유력한 진술이었다.
사건은 결국 유력 증거가 나온지 보름만에 단서가 잡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였던 범인은 10차 범행에서 빼앗은 수표를 사용했고,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2000년 7월 10일. 안산 시내 한 슈퍼마켓에서 수표가 회수됐고 경찰은 범인이 우리 말이 서툰 중국계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문 감식 결과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다가 도주해 불법체류자가 됐다는 신분도 드러났다. 4월~ 6월까지 두달간 안산 일대를 공포에 떨게했던 범인의 윤곽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범인은 바로 외국인인 왕리웨이. 1999년 9월 산업 연수생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한 왕리웨이는 목포의 한 방직 공장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말이 서툴러 공장 직원들과 갈등이 잦았고 일이 힘들다며 근무지를 무단이탈하기도 했다. 이후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자 잡히지 않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가 많았던 안산의 공단 지역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이기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왕리웨이는 공사판을 전전하며 고시원에서 생활하게 됐다. 그럼에도 생활고가 심해지자 범죄를 결심하게 된다.
첫 번째 범행에서는 그냥 뺏었는데, 피해자가 도망가서 실패하자 왕리웨이는 다음부터는 해치기 위해 도구가 필요하겠다 생각해서 망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에 넣은 돈은 총 100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엽기적인 성추행을 저지른 이유는 평소 발기부전증으로 원만한 성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또 여체를 보거나 상대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성적 만족과 흥분을 느끼는 성도착증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건의 강도살인과 8건의 강도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왕리웨이는 한국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현재까지 복역한 62명의 사형수들 중 박경수(조선족)를 제외하면 사실 상 유일무이한 순정 외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