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은 대한민국 마라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로 평가받는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고(故) 손기정 선수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황영조 선수가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손기정의 경우 당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던 탓에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서명이 필요할 때 자신의 한국어 이름을 적었으며,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국적을 한국이라고 소개했다.
나라를 잃은 아픔을 이겨내고 세계를 제패한 손기정, 56년 뒤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공식적으로 한국의 첫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황영조. 두 사람의 '영광의 날'이 모두 8월9일이었던 셈이다.
손기정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42.195㎞를 2시간 29분 19초에 주파해 금메달을 따냈다. 이는 당시 올림픽 신기록이기도 했다.
이때 손기정과 함께 출전한 남승룡도 동메달을 목에 걸어, 한국인 선수들이 시상식 연단의 첫 번째와 세 번째를 차지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러나 이들의 메달 기록은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의 것으로 기록됐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탓에 올림픽 공식 기록에서 손기정 등 한국 선수들의 국적이 일본으로 적혔다.
광복 이후 손기정은 한국 체육계 발전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그는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육상경기연맹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후배 체육인 양성에 힘썼다. 손기정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봉송 최종 주자로 나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후 올림픽 공식 기록에서 손기정의 국적을 한국으로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대회 출전 당시의 국적을 시간이 흐른 뒤 수정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IOC 측은 2011년 공식 홈페이지 손기정 선수 소개란의 설명 문구를 수정했다. IOC는 손기정에 대해 "한국의 손기정(남한)"이라고 명시한 데 이어 "한국이 일본에 강점됐던 탓에 손기정과 그의 동료 남승룡은 (한국이 아닌) 일본 국적으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국내 육상계가 간절히 염원하던 공식적인 한국 첫 마라톤 금메달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나왔다. 당시 22세였던 황영조는 2시간 13분 23초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경기장에서는 56년 전 같은 날짜에 금메달을 따냈던 손기정이 후배의 질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기정은 마치 운명처럼, 자신과 같은 날짜에 한국의 첫 올림픽 마라톤 우승이란 대기록을 세운 황영조를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당시 황영조는 바르셀로나 주경기장의 난코스였던 몬주익 언덕에서 막판 스퍼트에 나섰다. 황영조는 자신의 뒤를 쫓던 일본과 독일 선수를 떨쳐내며 선두 자리를 지켜냈고, 온 힘을 쏟아내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에 '몬주익의 영웅'이란 별명도 얻게 됐다.
황영조의 금메달은 지금까지도 한국의 유일한 올림픽 육상 종목 금메달로 남아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이봉주가 은메달(마라톤)을 따낸 바 있고, 트랙과 필드에서는 아직 한국인 메달리스트가 나오지 않았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까지 정복한 황영조는 이후 은퇴해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황영조는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마라톤 국가대표팀 감독 등을 맡았다. 또 강원대 스포츠과학부 겸임교수, 대한체육회 이사 등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