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 새벽 서울 관악구의 한 재개발지구 빌라에 사는 여성 박모(사망당시 41)씨와 그의 아들(사망당시 6)이 침대 위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다. 범인은 이들에게 깊은 원한이 있었던 듯 여성은 무려 11차례, 아들은 3차례 칼로 찔러 살해했다.
경찰은 그날 새벽 1시쯤 집을 나왔다는 남편 증언에 따라 제3자 침입 가능성을 수사했지만, 물증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초기수사에 어려움을 겪던 경찰이 40여일 만에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놀랍게도 남편 조모씨(45)였다.
사건이 일어난 빌라는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으로 이웃의 눈을 피해 몰래 침입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탐문 조사 결과에서도 낯선 사람을 봤거나 수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또 현장에는 외부에서 강제로 침입한 흔적이 없었고 집 안의 귀중품도 그대로 있었다. 수사 기관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외부인에 의한 범죄 가능성 보다는 매우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 소행일 것으로 두고 수사를 했다.
그렇게 사건 발생 40여일 만에 용의자가 특정됐다. 용의자는 피해자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맞이할 수 있고 강제성 없이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 또 집에 드나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람인 바로 박씨의 남편이자 6살 아들의 아빠인 조씨였다
수사기관은 사망 추정 시간에 유일하게 집에 있었던 조씨가 범행했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그의 범행을 뒷받침해 줄 직접 증거는 없었다.
조씨는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은 피해자이고 누구보다 범인을 잡고 싶어 하는 남편이자 아빠이다"라며 "집에서 나올 때 두 사람이 살아있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음에도 수사 기관이 조씨를 의심한 데는 그럴만한 정황이 있었다.
도예가인 조씨는 결혼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 관리비와 생활비 등으로 월 수백만원을 쓰면서도 일정한 소득이 없어 아내로부터 지원받았다. 그러다 아내가 2018년 가을 무렵 지원을 끊으며 경제 활동하라고 요구하자 집을 뛰쳐나갔다.
그는 주변에 돈을 빌려 생활했지만 빚은 늘어만 갔고 2019년 5월부터는 경마에 빠져 카드론 대출 등으로 수백만원을 탕진했다.
이런 가운데 아내가 이혼소송까지 제기하면서 남아 있는 재산도 모두 사라지고 양육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또 조씨의 노트북에서는 보험사에 접속해 아내의 사망 보험금과 수령인이 자신인 것을 확인한 이력이 나오기도 했다.
이 외에도 조씨에게 결혼 6개월 차부터 내연녀가 있었던 점과 범행 전 이번 사건과 유사한 영화 본 점, 아들의 생년월일조차 모를 정도로 애정이 없었다는 점 등이 증거로 언급됐다.
조씨 측은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족을 살해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조씨 부모 역시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조씨를 범인으로 단정해 정황을 맞춰가는 수사를 했다며 맞섰다. 또 내연녀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들은 "내연녀가 일방적으로 아들을 쫓아다녔을 뿐이다. 설사 외도라고 해도 그것이 살인의 동기는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1심은 조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위(胃) 내용물을 통해 사망 시간을 추정하면 조씨가 집에 있던 시간에 모자가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법의학자들의 증언을 반영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위 내용물을 확인한 결과 식사 후 4시간 이내, 최대 6시간 이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피해자들이 조씨와 함께 있을 때 살해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또 조씨가 사건 발생 이후 세차와 이발, 목욕을 한 것은 혈흔 등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고 판단했다. 조씨가 장례에 관여하지 않고 빈소에 20분 정도만 머물다 떠난 데다 장례식장에서 통곡하지 않고 법정에서 아들의 생전 진술이 전해지는 내내 미동도 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2심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특히 범인이 양손잡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상처 부위를 봤을 때 양손잡이 범행"이라며 "조씨는 원래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으로 칼을 정교하게 사용하면서 도자기도 만들었으니 양손을 원활하게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조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 그는 1심 최후진술에서 "저는 아내와 아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2심에서도 "제가 가장 큰 피해자인데 저를 피의자라고 한다"며 "저를 걱정하고 믿어주는 가족이 없었다면 하루하루 버틸 수 없었으며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도 같은 마음으로 저와 함께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눈물을 흘렸다.
조씨 호소에도 대법원에서 이변은 없었다. 조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이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원은 "간접증거를 고찰해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해서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봤다.
무거운 형벌에도 유가족의 마음은 여전히 처참했다. 피해자 박씨의 언니는 1심 재판이 끝나고 기자들을 만나 "솔직히 말해 유족 입장에서는 어떤 형벌이 나오더라도 만족할 수가 없다"며 "지금 제 동생과 조카는 저희 곁에 없지 않느냐"고 흐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