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영화 평론가입니다."
직장인 박모씨(29)는 지난 10일 메신저 앱(애플리케이션) '라인'으로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자신을 영화 평론가라고 소개하며 세가지 설문조사에 답변하면 답례로 2만원을 준다고 했다.
질문 내용은 간단했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무엇인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연령대는 어떻게 되는지. 각각 질문별로 A, B, C, D, E 선택지까지 있어서 간단하게 답만 적어내면 됐다. 박씨는 반신반의한 심정으로 답변을 적어냈다. 그러자 평론가는 안내원을 통해 2만원을 받으라고 했다.
박씨는 평론가 말을 듣고 안내원이 있는 채팅방으로 이동했다. 안내원은 돈을 보내주면서 설문조사에 계속 참여하겠냐고 물었다. 텔레그램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설문조사 한 건당 5000원을 주겠다고 했다. 박씨 입장에선 돈을 벌 수 있으니 손해 볼 게 없었다. 20분에 한 번씩 안내원이 보낸 질문에 답을 하자 어느새 돈이 5만원 정도 쌓였다.
그러자 안내원은 VIP 적립 이벤트를 제안했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영화 사이트 '19905VIP'에서 티켓을 사전 예매하면 나중에 인센티브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영화는 최신작이 아닌, 2000년대 초중반에 개봉한 작품이었다. 박씨는 속는 셈 치고 설문조사로 번 10만원을 투자했다. 그러자 5분 뒤 13만원이 계좌로 들어왔다.
VIP로 승급된 이후에는 설문조사 참여비도 건당 5000원에서 1만2500원으로 올랐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추가로 70만원 상당의 돈을 모았다. 안내원은 1차로 끝났던 예매 이벤트를 이번에는 3차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1차에서 52만원, 2차에서 145만원, 3차에서 660만원을 입금하면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박씨가 660만원까지 사비를 털어 돈을 입금하자 안내원은 돌연 말을 바꿨다. 이번에는 이벤트가 문제가 생겼다며 추가로 1300만원을 입금라고 했다. 박씨는 의심이 들었지만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이벤트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본인이 투자한 원금까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람잡이도 합세했다. 텔레그램에는 "지금 돈이 없는데 빨리 구해올게요" "지금 바로 투자할게요" 등의 글이 올라왔다. 결국 박씨는 이벤트 참여 명목으로 총 2000만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그때 이후 안내원이 자취를 감췄다. 이벤트 계좌가 동결됐다는 말만 남긴 채 잠적했다. 이 모든 일은 이틀만에 벌어졌다.
일산 동부경찰서는 영화 설문 조사를 사칭해 수천만원을 빼앗은 이들 일당을 수사 중이라고 17일 밝혔다. 현재까지 관련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최소 30명. 피해자는 서울, 제주도, 울산 등 전국 각지에 있으며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피해 금액은 최소 10만원부터 최대 1억7000만원까지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전국적으로 있기 때문에 한 경찰서에서 병합해 수사할 가능성도 있다"며 "현재 범인을 추적 중이며 구체적인 혐의는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