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은 치솟는데 어디로…축구 꿈나무들 참사 부른 쇠창살[뉴스속오늘]

이은 기자
2025.03.26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03년 3월 26일. 충남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예고 영상

2003년 3월 26일 밤 11시20분쯤 충남 천안시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았다. 화마는 운동을 마친 뒤 잠자고 있던 축구부원 24명을 덮쳤다. 119 대원과 경찰, 인근 주민 등 100여 명이 진화에 나서 불은 약 25분 만에 진화됐다. 건물 바깥쪽엔 그을음이 거의 없을 만큼 물적 피해는 작았지만 인명 피해는 컸다.

축구부원이었던 어린이 8명이 이미 실내에 가득 퍼진 유독가스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가장 어린 피해자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나머지 축구부원 16명과 코치 등은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중상을 입었던 어린이 중 1명은 이후 10여 일간 치료받다 급성호흡부전 증후군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 사망자가 8명에서 9명으로 늘었다.

불은 25분 만에 꺼졌지만…쇠창살에 가로막힌 창문, 탈출 막았다
2003년 3월 26일. 충남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예고 영상

화재는 전기합선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냉장고 전원공급용 콘센트 부위에서 '펑' 소리와 함께 정전되면서 불꽃이 튀었다는 진술이 나왔고 합숙소 내 주방에 있는 전기밥통과 냉장고 부근 전기 배선이 심하게 녹아내린 것이 확인됐다.

불이 난 합숙소 건물은 1993년 10월 시멘트 벽돌로 지어진 1층짜리 슬래브 건물이었다. 축구부 코치가 사용하는 방과 축구부원 20명이 자는 큰 방과 4명이 자는 작은 방, 거실과 주방, 화장실, 창고 등이 있는 구조였다.

몇 걸음만 떼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단층 건물인데다 부원들이 지내던 방에는 각각 창문이 있었지만 탈출은 쉽지 않았다.

작은 방에 설치된 창문은 사무실용 컨테이너에 막혀 있었고 큰방 출입문 쪽 창문은 신발장 등으로 가려져 있었던 데다 축구용품을 도난당할까 염려해 설치한 쇠창살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출입문 외에 별다른 탈출구가 없었던 셈이다.

또한 합숙소서 불이 나자 단열과 보온을 위해 설치된 스티로폼에선 유독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여러 장애물에 가로막힌 창문은 유독가스를 빼내는 역할도 하지 못했다. 화장실에 설치돼 있던 환풍기도 화재 당시 건물에 전기가 나가면서 작동하지 못했다.

불이 난 것을 알아챈 일부 어린이는 알루미늄 창살을 뚫고 탈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119구조대원이 도착한 뒤에야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10년간 소방 안전 점검 '0회'…아이들 곁에 보호자 없었다
2003년 3월 26일. 충남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에서 불이 나 2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예고 영상

참사가 발생한 합숙소는 지어진 후 10년간 단 한 차례도 소방 안전 점검을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고 직전 해인 2002년 주방에서 작은 불이 났지만 천안초등학교와 천안소방서는 안전 점검과 시설 개선 등 사후 조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서 측은 합숙소가 점검 대상(건축면적 400㎡ 이상)에 포함되지 않아 점검하지 않았다며 학교 측에서 자체 안전 점검을 해야 한다고 했으나 학교 측은 학교시설물로 등록되지 않아 자체 소방 점검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화재 당시 축구부 감독과 코치는 모두 외부에 있어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어른은 한 명도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지역 언론인 '충청투데이'에 따르면 당시 감독은 이날 치러진 연습 경기에 대해 일부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릴 비운 상태였다.

안타까운 화재 참사 그 후…합숙 훈련 단계적 폐지
지난해 3월 26일 천안초등학교 내에 마련된 추모비 앞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천안시

축구선수 꿈을 키우던 어린이 9명의 생명을 앗아간 참사는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 문화를 바꿔놨다는 평을 받는다.

수업과 운동에 지친 학생들이 지쳐 잠들어 있던 한밤중에 화재가 발생해 대피가 어려웠던 것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에 엘리트 스포츠 합숙 문화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국은 전국 학교 합숙 시설에 대한 안전 점검에 나섰으며 학교체육진흥법에 따라 학생들의 학기 중 합숙 훈련이 단계적으로 폐지됐다.

화재 참사와 관련한 이들은 법정에 섰다.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됐던 축구부 감독과 코치는 금고 1년 2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천안초 교장은 벌금 1000만원, 학교 체육부장, 행정실장 등은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유가족은 축구부 감독과 코치의 처벌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초등학교 내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마련됐으며 매년 추모 행사가 열린다. 대한축구협회는 유가족이 충남축구협회에 요청한 것을 받아들여 화재 사고로 숨진 축구부 희생자들을 명예 유소년대표상비군 선수로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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