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전 오늘 1974년 8월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지하철이다.
당시 지하철 1호선은 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근대화를 상징하는 첨단 교통수단이었다. 수도 서울의 명물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서울역부터 청량리역까지 9개역을 5분 간격으로 운행했다. 이후 1호선은 서울을 넘어 경기 연천과 인천, 충남 천안·아산까지 연결됐고 없어서는 안 될 도시철도로 자리잡았다.
서울 지하철 건설이 처음 논의된 건 일제 강점기 때다. 1920년대 서울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서자 전차와 버스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1930년대 일제는 본격적인 지하철 건설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일제가 철근·시멘트 등 건축자재를 전부 전쟁용으로 사용해 중단됐다.
그러다가 광복을 맞았고 한동안 수면 아래 있던 지하철 건설 계획은 1960년대 들어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다시 논의 안건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지하철을 건설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 당시 경제 규모와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큰 모험이었다.
윤치영 당시 서울시장이 국회에 제출한 '서울 교통문제 해결책'에 지하철 건설 계획을 언급한 것이 1호선 탄생의 본격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서울에는 전차가 있었는데 속도가 느리고 노후화로 자주 고장나 오히려 도로 교통 체증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다가 결국 1968년 철거됐다.
서울시는 1965년 '서울 시정 10개년 계획'을 통해 '향후 10년 내 지하철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이후 김현옥 당시 시장 지휘로 본격적인 준비에 나서 1970년 서울 지하철 건설본부를 발족했다. 그해 10월 정부가 '지하철 1호선 건설계획'을 발표하면서 공식화됐다. 당시 건설본부는 "정성으로 건설해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겠다"는 슬로건을 걸고 작업에 힘썼다.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 1호선은 1971년 착공됐다. 그해 4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착공식엔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3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당시 지하철 1호선 건설이 국가적으로 큰 관심사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3년의 공사를 거쳐 광복 29주년인 1974년 8월15일 지하철 1호선이 드디어 개통됐다. 서울역부터 청량리역까지 종로 일대를 오가기 때문에 종로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역사적으로 기념해야 할 순간이었지만 개통식 직전 광복절 경축 기념식에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이 벌어져 개통식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양택식 당시 시장은 "땅 속을 뚫기 3년4개월, 서울 시민 교통에 신기원을 이룩할 지하철 종로선이 650만 시민의 뜨거운 염원 속에서 완공됐다"며 "이 거역이 우리 기술과 노력으로만 이뤄졌으니 민족 저력을 과시할 장한 일"이라고 밝혔다.
처음 운행했을 때 1호선(종로선)은 서울역부터 청량리역까지 9개역 7.8㎞ 구간을 출·퇴근 시간 기준 5분 간격으로 운행했다. 지하철 개념이 낯설던 시절이어서 시승 행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온 이용객도 있었다.
개통 첫해 요금은 30원이었다. 개통 당시엔 한여름이어서 천장에 선풍기를 달고 운행했다. 열차는 모두 6량이었다. 첫해 수송 인원은 3177만명으로 집계됐다.
지하철 1호선을 시작으로 구간과 노선이 꾸준히 늘었고 지하철은 명실상부 '시민의 발'이 됐다. 1호선만 봐도 수도권 최북단과 최남단 등을 모두 연결한다. 경기 연천부터 경기 평택을 넘어 충남 천안·아산까지 이어진다.
지하철이 수도권 일대를 연결하면서 서울 교통난이 일정부분 해소됐을 뿐만 아니라 과밀된 인구가 경기·인천 등으로 분산되는 효과가 따랐다. 새로운 주거지역이 개발되고 도시 기능이 분산되는 효과도 이어졌다.
지하철역은 쉽게 찾을 수 있어 시민들 '만남의 장소'로 자리잡았다. 또한 정시 도착이 보장되는 지하철 등장으로 약속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코리안타임'이 다소 줄어드는 효과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