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에서 정액이 검출됐으나 고의로 묻혔다고 단정할 수 없다"
6년 전 오늘인 2019년 10월15일, 시내버스 안에서 전화 통화하던 30대 여성 뒷머리에 체액(정액)을 뿌린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A씨(당시 39세)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A씨는 2018년 5월14일 밤 서울발 군포행 버스 맨 뒷자리에서 앞자리에 앉아 있던 B씨(31) 뒷머리를 향해 체액을 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죄목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B씨는 수사기관에 "통화 도중 뒷좌석에서 머리를 건드리는 기척을 2번 정도 느꼈다"며 "버스에서 내릴 무렵 머리를 만져보니 젖어 있었고 정액 같은 냄새가 나 A씨에게 '뭘 묻혔냐'고 물어보니 '그런 적 없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A씨 측은 '술에 취해 버스에서 잠들었고 비염으로 재채기를 했을지언정 정액을 묻힌 사실은 없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온 정액이 손이나 의복에 묻어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피해자에게 묻은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듬해 4월 1심 법원은 피해자 진술조서, 유전자 감정서 등을 토대로 A씨가 B씨에게 고의로 체액을 묻힌 사실이 인정된다며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40시간·사회봉사 160시간을 명령했다.
1심 재판부는 "검거 당시 피고인(A씨) 걸음걸이, 태도, 진술 내용이 만취한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고, 사물 변별·의사 결정 능력이 충분한 상태였다"며 "피고인 정액이 피해자(B씨)에게 튀거나 저절로 정액이 나온 상태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피고인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2심 판단은 달랐다. A씨 항소로 약 6개월 만에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수원지법 형사항소8부(부장판사 송승우)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론 A씨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고 보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부터 당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당시 음란행위(자위)를 한 적이 없고, 정액을 고의로 피해자 머리에 묻게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도 피고인이 음란행위나 머리에 정액을 묻히는 것을 직접 본 바 없고 추측한 것에 불과하며 이를 증명할 목격자 진술이나 폐쇄회로(CC)TV 영상 등 증거도 없다"며 "CCTV에선 피고인이 조는 모습만 확인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피해자 머리카락에서 피고인 정액 성분이 검출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머리카락에선 피고인 타액 성분도 함께 검출됐다. 정액과 타액의 구성 비율, 묻은 시점과 선후관계는 알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선 수개월 전 묻은 극소량 정액도 검출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또 당시 B씨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A씨 구강상피세포만 채취해 감정을 의뢰했을 뿐 A씨 손이나 다른 신체에 정액이 묻어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아 감정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러면서 "피해자 진술과 (국과수) 감정 결과만으론 피고인이 고의로 피해자 머리에 정액을 묻게 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피고인 타액과 정액이 다른 경로를 통해 체액이 묻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판결 직후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한 누리꾼들은 "도저히 납득가지 않는 판결" "어떻게 하면 정액이 머리에 고의성 없이 묻을 수 있나" "재채기할 때 침 말고 정액도 같이 나오냐" "법원이 성범죄자를 양성한다" 등 비판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