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 벗겨진 채 사망" 차에 치인 대구 여대생…정액 나와도 "무죄"[뉴스속오늘]

박다영 기자
2025.10.16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대구 여대생 성폭력 사망사건의 범인으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A씨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구지법 법정을 나오고 있다. /사진=뉴스1

1998년 10월 16일. 대구 계명대학교 1학년 재학생이던 여대생 정모씨는 학교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다가 오후 10시 40분쯤 실종됐다. 이른바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정씨는 다음날인 17일 새벽 5시 1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현재 중부내륙고속도로) 하행선 7.7km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속옷 없이 바지만 입고 발견된 피해자…경찰은 "단순 교통사고"

정씨의 사망 원인은 단순 사고였다. 정씨는 고속도로를 지나던 25t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당시 트럭 기사는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던 행인을 치어 사망하게 했다며 119에 신고했다.

정씨의 유가족은 정씨의 죽음이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성폭행 후 교통사고로 위장한 성폭행 치사라고 주장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유가족은 정씨의 죽음이 단순 교통사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성폭행 후 교통사고로 위장한 성폭행 치사라는 입장이었다. 차에 치여 숨진 정씨가 속옷 없이 바지만 입고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정씨의 친구들이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정씨 속옷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유가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씨 몸에서 성폭행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발견된 속옷은 대학교 1학년인 젊은 여성이 입는 속옷으로 볼 수 없고 나이 든 여성이 입는 속옷으로 보인다고 했다.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짓고 두 달 만에 사건을 마무리했다.

유가족은 재수사를 요구했다. 경찰은 사건 5개월 만에 속옷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의뢰했고 속옷에서 정액이 검출됐지만 경찰은 성폭행 증거가 부족하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유가족은 포기하지 않았고 1년 3개월 뒤 정씨 속옷에 대해 유전자(DNA) 분석이 이뤄졌다. 그 결과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속옷은 정씨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남성의 DNA가 추가로 검출됐으나 경찰이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진행한 검사에서는 일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건이 발생한 후 15년이 지난 2013년 정씨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상당 부분 일치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당시 대구 성서공단 근로자였던 스리랑카인 A씨였다. A씨는 2011년 청소년에게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었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의 시효 만료 한 달을 남겨두고 A씨를 구속기소했다. 강간죄 공소시효 5년, 특수강간죄 공소시효 10년이 각각 지난 데 따라 공소시효가 남은 특수강도강간죄를 적용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 등 일행 3명이 자신들이 타고 온 자전거에 정씨를 앉혀 사건 현장으로 데려간 후 성폭행했고 이후 정씨가 고속도로 쪽으로 달아나다 사고가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저지른 스리랑카인, 대법원에서도 무죄…유가족, 국가 상대 손배소송서 승소
/사진=대한민국 법원

1심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A씨가 공범들과 집단 성폭행했을 가능성은 인정되나 강간죄의 법정 시효는 10년이므로 이미 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했다.

대법원은 강도 혐의에 대해 증거 부족, 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2017년 7월 무죄를 확정했다.

다만 A씨는 2013년 다른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와 2008~2009년 무면허 운전을 한 별도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돼 강제 추방이 결정됐다.

스리랑카 형법상 강간죄 공소시효가 남아있었고 법무부는 스리랑카에 기소를 요청했다. A씨는 2018년 10월 현지 공소시효 만료를 4일 앞두고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스리랑카 검찰은 A씨의 DNA가 정씨의 몸이 아니라 속옷에서 발견됐으며, 강압적 성행위를 인정할 증거가 없는 등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성폭행이 아닌 성추행 혐의로만 기소했다. 스리랑카 형법에 따르면 성추행죄는 징역 5년 이하다.

유가족은 2000년 담당 경찰관 등을 직무유기로 고소했지만 각하 처분을 받았다. 2001년 경찰관 등에 대한 불기소 처분에 헌법소원을 냈으나 기각됐다.

유가족은 2017년 9월 다시 한 번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2021년 9월 승소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단순한 교통사고로 성급히 판단해 현장 조사와 증거 수집을 하지 않고 증거물 감정을 지연하는 등 극히 부실하게 초동수사를 했다"며 국가가 정씨 부모에게 각 2000만원, 형제 3명에게 각 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에 더해 국가가 부모에게 지급할 배상금에 각 1000만원을 더해 3000만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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