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가인 T. 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은 '황무지'란 시에서 4월을 잔인한 달로 표현했다. 엘리엇은 황무지를 통해 꽃이 피는 봄, 그리고 4월의 찬란함과 비통함을 동시에 보여줬다.
하지만 내게 잔인한 달은 9월이다. 매년 가을 발표되는 자살 사망원인 통계 때문이다. 자살사망자는 2023년에 비해 지난해 894명 늘었다.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9.1명이다. 통계 최초로 40대 사망원인 1위도 '자살'이었다.
통계 발표 2주 전 정부는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5년 내 자살자 수 1만명 이하, 10년 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 오명을 탈피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목표만 요란할 뿐 실행에 대한 깊이는 여전히 얕다.
우선 목표의 구체성이 떨어진다. 정부는 자살률을 2029년 19.4명, 2023년 17.0명 이하라는 숫자를 내세웠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근거 기반 정책을 반영한 연령, 지역, 원인별 세부 목표는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 감축 지표가 없다면 목표가 아니라 구호에 불과하다.
여전히 공급자 중심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략 속 핵심인 '고위험군 대응 강화'는 "사후 대응하겠다"는 말과 같다. 위험군을 발굴하기보다 스스로 찾아오면 지원해주겠다는 구조다. 찾아가는 예방이 아닌 찾아오는 대응은 자살 문제 해결을 강조한 정부 기조와 거리가 멀다.
지방자치단체 대응 체계도 부실하다. 자살예방관 지정은 기존 업무 담당자가 겸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방정부 책임을 강화한다면서 인력·조직을 늘릴 생각은 없다. 역할과 책임을 지우는 근거나 제도도 없다. 지자체 사무에 자살예방을 명시하고 시행계획 수립을 226개 기초자치단체로 확대해야 한다.
새로운 예방전략은 '백화점식 정책 재탕'에 불과하다. 각 부처 기존 사업을 늘어놓은 종합 선물 세트일 뿐 새로움이 없다. 전략 수립 과정에서 시민사회, 전문가, 현장 실무자의 폭넓은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여전히 탑 다운, 관(官) 중심의 정책이 답습되고 있다.
가장 필요한 건 자살예방 컨트롤타워다. 1년에 한 번, 두 시간 남짓 열리는 자살예방정책위원회로는 범정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없다. 2019년부터 설치·운영되고 있는 자살예방정책위원회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자살예방정책의 중장기 정책목표와 추진방향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보건복지부가 사무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나 복지부 단독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조정력과 집행력을 확보하려면 대통령 주도 자살예방위원회로 전환하고 부처 간 점검 시스템을 상시화해야 한다.
자살예방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 시급하다. 생명을 수치로 다루는 행정에서 벗어나 인간의 절망을 미리 발견하고 품어내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자살은 개인의 비극이 아닌 국가정책의 실패다. 그 실패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오늘도 40명 넘는 소중한 국민이 자살로 내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