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로 고령운전자 '운전 능력' 진단…"강의식 교육보다 도움 돼"

박진호 기자
2026.03.04 16:17
4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도로교통공단 강서운전면허시험장에서 VR 진단에 참여한 이동식씨(84) 모습. /영상=박진호 기자.

"우와 뭔가 보이네요, 우주 비행기를 탄 것 같아요."

4일 오전 서울 강서운전면허시험장을 찾은 이동식씨(84)는 머리에 가상환경(VR) 진단 장비를 착용한 채 이같이 말했다. 이씨 앞에는 가상 주행 환경이 구현되는 3개의 모니터가 놓여있었다. 이씨는 "긴장한 탓에 가상 내비게이션의 지시를 놓치긴 했다"면서도 "덤프트럭 등 중장비와 시내버스를 몰았던 경력으로 사고 없이 무사히 진단을 마쳤다"고 말했다.

경찰청과 한국도로교통공단은 지난달 11일부터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운전능력 진단시스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신체·인지능력이 저하된 고위험 운전자의 운전능력 진단 체계를 제도화하기 위해서다.

운전능력 진단시스템은 희망자에 한해 VR과 실차(실제 차량) 2가지 방식으로 운영된다. VR 진단은 △정지선 위반 △과속 여부 △사고 여부 △우회전 법규 준수 등 항목별로 검사 결과가 측정된다. 결과지를 토대로 공단 관계자가 보완점을 설명해주는 식이다.

실차 진단은 정량 점수와 함께 △양호 △보통 △위험 등 3개의 등급이 매겨진다. 참여 결과가 '면허 취소' 같은 행정처분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필요시 운전면허 자진 반납을 권유받을 순 있다.

"기존 교육보다 실차 테스트가 더 도움"…운전능력 진단 체계 제도화
4일 오전 강서운전면허시험장에서 실차 진단에 참여한 류재근씨(79) 모습. /영상=박진호 기자.

이날 VR 진단을 희망한 참여자는 총 3명이다. 한 남성 참여자는 "택시 기사라서 운전은 자신 있다"며 다른 참여자들을 응원했다. 옆자리 전모씨(82)도 "운전 경력이 30년 이상"이라며 "수료에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처음 접하는 VR 기기에 미숙한 모습을 보였지만 대부분 빠르게 적응했다. 전씨는 "VR이라 어지러울까 걱정했는데 그런 건 없었다"며 "실제와 조금 다른 느낌이 있으나 사고 없이 마쳤다"고 했다.

같은 날 기능시험장에서는 실차 진단도 동시에 진행됐다. 진단 과정에는 'T자 주차' 등이 포함됐다. 운전 도중 산수 문제도 등장했다. 돌발상황과 인지능력 평가 차원이다.

운전 경력 40년 이상의 류재근씨(79)는 "경사로를 올라가는 구간에서 갑자기 '100에서 7을 뺀 결과'를 물어 당황했지만 곧바로 답을 골랐다"고 말했다. 여성 운전자 B씨(80)는 "5년 가까이 운전대를 놓아서 그런지 'T자 주차'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참여자들은 기존 강의식 교육보다 체험형 진단테스트가 유익하다고 입을 모았다. B씨는 "일반 교육을 선택하면 2시간 정도 앉아서 강의만 듣게 된다"며 "실차 등으로 진단 과정이 병행되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과 공단은 이번 시범운영을 통해 고령 운전자의 운전능력 진단 체계를 제도화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시범운영 기간 향후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위한 데이터를 쌓을 예정"이라며 "평가 영역별로 점수화해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마련하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4일 오전 서울 강서운전면허시험장 실차 진단 대기실 모습. 참여자들에게 주행 코스 등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박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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