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진술 녹화물'만으로도 증거 인정, 합헌"

이혜수 기자
2026.03.26 16:00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걸린 헌법재판소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사진=뉴스1

장애를 가진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이 녹화된 영상을 피고인 측의 피해자에 대한 반대신문 없이 법정 증거로 활용하게 한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헌재는 26일 부산고법 울산재판부가 제청한 옛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제6항 중 '신체·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성폭력 범죄 피해자' 부분에 대해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선고했다. 위헌 의견이 다수이나 헌재는 위헌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을 충족하지 못해 합헌으로 결론 내렸다.

이 사건 쟁점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물을 피고인의 반대신문 없이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 헌법에서 정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지 여부였다.

문제가 된 조항은 조사 과정에 동석한 신뢰관계인 등의 진술로 영상물의 진정성이 인정되면,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도 해당 영상을 증거로 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은 제청신청인 A씨는 지적장애 3급 장애인이자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인 피해자를 추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및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등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CD를 증거 부동의했으나 법원이 피해자에 대한 신문 없이 이를 증거로 사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A씨는 2심이 진행되던 중 영상물에 수록된 피해자의 진술 증거 능력 특례를 규정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해당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A씨의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다 보고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합헌 의견을 낸 김형두·조한창·정계선·마은혁 재판관 4인은 피해자의 반대신문이 제한된단 사정만으로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들 재판관은 "성폭력범죄 피해자는 법정 진술 과정에서 심리적 위축과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고 특히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장애인 피해자는 인지 및 의사소통의 제약으로 인해 더 큰 부담과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며 "해당 조항은 장애인 피해자가 법정 진술 과정에서 겪을 정신적 고통과 2차 피해를 방지하는 걸 주된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도한 신문이나 의사소통의 제약 등으로 진술이 왜곡되거나 불명확해질 위험을 완화하고, 장애인 피해자의 법정 출석과 대면신문을 최소화하므로 (입법) 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적합한 수단에 해당한다"고 했다.

위헌 의견을 낸 김상환 헌재소장, 정정미·정형식·김복형·오영준 재판관 5인은 해당 조항이 반대신문에 의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들 재판관은 "반대신문권은 단순 진술의 신빙성 검증을 위한 수단을 넘어 피고인이 진술의 형성과정에 참여해 다툴 기회를 보장해 형사절차의 공정성·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이를 배제하는 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형해화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절차적 보완수단을 통한 조정 가능성을 차단함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며 "해당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A씨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헌재가 2021년 12월23일 19세 미만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 진술 증거능력을 위헌으로 판단한 것과 대비된다. 당시 헌재는 피해자의 진술이 수록된 영상물의 조사 과정에 동석한 신뢰관계인의 진술만으로 증거로 인정한 데 대해 위헌으로 결정한 바 있다.

헌재는 "해당 사건 이후 입법자는 2023년 7월11일 법률 개정을 통해 피해자 진술 영상녹화물의 증거능력 특례에 관한 조항을 신설해 증거능력 인정 요건을 전반적으로 강화했다"며 "이 사건은 개정되기 전 옛 법 조항 중 특히 '장애인 피해자'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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