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살해범, 사형 내려 달라"…빚 때문에 부모·처자식 죽인 50대 최후[뉴스속오늘]

윤혜주 기자
2026.04.15 05:53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지난해 4월 17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용인동부경찰서에서 살인 및 존속살인 혐의를 받는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나오고 있다/사진=뉴스1

재판부가 '잠을 설칠 정도로 사형 선고를 고민했다'고 언급했을 만큼 끔찍했던 '일가족 5명 살해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흘렀다.

수면제 섞인 요구르트 건네…잠든 가족들 목 졸라

2025년 4월 15일 일가족 5명을 살해한 50대 남성 A씨가 붙잡혔다. A씨는 경기도 용인시에서 범행을 저지른 뒤 광주의 한 오피스텔로 달아났다가 뒤를 쫓고 있던 경찰에 의해 검거됐다.

검거 하루 전날인 지난해 4월 14일 A씨는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한 아파트에서 80대 부모와 50대 아내, 10대·20대 딸 등 자신의 가족 5명을 살해했다.

불면증 진단을 받은 A씨는 같은해 1월 23일 광주 소재 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졸피뎀 성분 약 10정과 로라제팜 성분 약 10정을 처방받았다. 또 두 성분의 약을 같은해 2월 4일에 각 14정씩 총 28정을, 3월 27일에는 각 15정씩 총 30정을 처방받았다.

A씨는 처방받은 알약 수면제를 가루로 만들기 위해 3월 31일 분쇄기를 구입했고, 4월 9일 당시 보관 중이었던 수면제 25정을 가루로 만들었다. 이후 4월 13일에서 14일 사이 떠먹는 요구르트를 구입해 수면제 가루를 넣어 섞었다.

A씨에게 떠먹는 요구르트를 받아서 먹은 가족들은 모두 잠들었다. 그러자 A씨는 이들이 있는 각 방에 들어가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일가족이 숨진 채 발견된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의 모습/사진=뉴스1

범행 직후 A씨는 승용차를 타고 광주시에 있는 또 다른 거주지로 도주하면서 다른 가족에게 "가족을 죽이고, 나도 죽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해당 메시지를 받은 가족의 신고를 받고 소방 당국이 출동했다. 소방당국이 아파트 문을 강제로 열었을 때 이미 5명 모두 숨진 상태였다. 경찰은 A씨 동선 추적에 나섰다. A씨는 광주의 한 빌라로 은신처를 옮겼으나 결국 덜미를 잡혔다. 검거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한 상태로 발견됐고 이후 병원에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범행 이유가 "가족한테 빚 못 넘긴다"

의식을 찾은 A씨는 용인으로 압송됐다. 경기 용인서부경찰서는 살인 및 존속살인 혐의로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를 시작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선 "아파트 분양과 관련한 사업을 하던 중 계약자들로부터 '사기 분양'으로 고소당했다. 이로 인해 엄청난 빚을 지고 민사 소송까지 당하는 처지에 몰렸다"며 "가족들에게 채무를 떠안게 할 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주말부부로 혼자 광주에 거주했다. 주택건설업체 대표이사를 지내며 광주시 일대 민간임대아파트 신축 및 분양 사업을 진행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관할 구청에 신고하지 않고 사전 입주자를 모집하는 등 무리한 사업 진행으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이를 알게 된 아파트 계약자들이 A씨에 대한 민사 소송 및 형사 고소 사건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실제 광주 동부경찰서는 동구 한 협동조합형 민간임대주택 시행사 창립준비위원회를 상대로 다수의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를 진행해 A씨를 사기 혐의로 입건한 상태였다. 고소인들은 준비위가 조합 설립 전 1인당 가계약금 1000만원, 또는 계약금 3000만원을 받았지만 환불 요청을 들어주지 않아 금전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 사건으로 수십억원 상당의 채무를 부담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A씨가 사기 혐의 수사를 맡은 경찰을 고소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광주 동부경찰서는 A씨에 대한 사기 혐의를 수사하며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계약자 220명에게 '허위광고로 피해입은 분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또 '계약자 중 사기로 형사고소하실 분은 문자메시지를 달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A씨 측은 "경찰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계약자 신상정보를 이용해 계약자들에게 마치 이미 죄가 확정된 것처럼 확대 수사를 벌여 고소장을 낸 것"이라며 업무 방해와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광주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을 수사해달라는 취지의 고소장을 냈다.

"난 살해범, 사형 내려달라"
지난해 4월 24일 검찰로 송치되는 A씨/사진=뉴시스

경찰은 A씨에 대한 신상 공개는 하지 않기로 했다. 사망자가 5명에 달하는 등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점을 고려한다면 신상 공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족들의 의사를 고려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유족들은 A씨 신상이 공개될 경우 사망한 피해자들의 또 다른 가족들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할 거라고 우려했다.

검찰은 살인 및 존속살인 혐의에 더해 마약류관리에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씨를 구속 기소했다. 수원지법은 지난해 6월 A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고, 이 자리에서 A씨는 자신의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이에 이날 공판은 10분 만에 속전속결로 끝났다. 공판 말미에 A씨는 "가족들에 대한 비극적인 이야기"라며 '비공개 재판'을 요구했다.

약 한 달 뒤 진행된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A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사업 실패 후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남겨주기 싫다는 이유로 가족 5명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사안으로 그 내용이 매우 중하고 죄질이 불량하다.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일부 저항이 있었음에도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의 큰딸은 독일 유학 도중 가족들을 보기 위해 일시 귀국했다가 예기치 못한 살해를 당했고, 작은딸은 대학 신입생으로서 청춘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며 "가족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여기지 않고 본인이 마음대로 그들의 생활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발상에 불과하다. 그에 상응하는 중형을 선고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A씨도 최후진술에서 스스로를 '소중한 가족을 살해한 살해범'이라고 지칭하며 "사형 같은 법정 최고형으로 엄벌을 내려 달라.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다. 평생 뉘우치고 회개하며 살겠다"고 했다.

"사형과 무기징역 사이 번민"…법관마저 밤잠 설친 참혹함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계획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하면서 "피해자가 가족이고 숫자를 고려하면 피고인을 형법이 정한 가장 무거운 형인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검사의 의견에 수긍이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사람의 생명을 앗는 사형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는데 과거 사형이 확정된 사건을 분석하면 피고인을 사형에 처할만한 정당한 사정이 명백하게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형 외에 가장 무거운 형벌인 무기징역을 선고해 영구히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평생 가족들에게 속죄하도록 하는 게 맞는다고 봤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무기징역이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A씨는 항소하지 않았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가족들이 먹을 수면제 가루를 만들기 위한 도구도 미리 구입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 판결은 국민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사형을 구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에게 일침을 가했다. 재판부는 "그냥 고개만 숙이지 말라. 피고인이 자기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있어 아무 말도 안하는 것인지, 반성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며 "너무나도 비극적이라 피고인을 동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반성문이나 판사에게 심경을 선고 기일 전에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사형 폐지국가로 분류되고 있고 사형이 확정된 것이 전례 없지만 법관이 잠도 이르지 못할 정도로 고민되는 사안"이라며 "과거로 돌아가면 이같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인지 얘기해줄 수 있냐"고 A씨에게 물었다. 이에 A씨는 "한 마디만 말씀드리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매일 이런 생각을 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12월 항소심 재판부는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과 같은 판단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버거운 비통한 범행"이라면서도 2004년 이후 사형이 확정된 15개 사건의 주요 양형 요소를 분석하며 "검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피고인을 엄중한 형으로 처벌할 사정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누구라도 수긍할 만큼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올해 1월 양측 모두 상고하지 않으면서 A씨는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수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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