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흡연자도 "담타 갖자" 3만명 우르르...가짜 흡연실 인기, 왜?

김희정 기자
2026.04.22 09:29

담타·거지맵·음식만안와요…MZ세대의 고물가 생존법 '초경량 공감'

'온라인 담타' damta.world에서 가상 흡연을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오후 2시 17분. 서울의 한 IT 기업 7층 사무실. 스물다섯 살 기획자 이모 씨는 모니터 앞에서 슬그머니 새 탭을 열었다. 접속한 사이트 화면 한가운데에는 담배 한 개비가 놓여 있었다. 그는 마우스로 필터 부분을 천천히 클릭했다. 담배 끝에 불이 붙었다. 담뱃재가 조금씩 쌓였다. 그가 실제로 담배를 피운 건 아니다. 그는 평생 한 번도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 그런데도 3분 동안 그 화면 앞을 떠나지 않았다.

"솔직히 처음엔 웃겨서 들어갔는데, 채팅창 보다 보니까 계속 있게 되더라고요. '저도 팀장 때문에 죽겠어요'라고 누가 쳤는데, 그냥 제 얘기 같았어요."

이씨가 접속한 곳은 '온라인 담타(damta.world)'다. 비흡연자를 위한 가상 흡연실 소셜 커뮤니티. 하루 누적 접속자가 약 3만명에 달하는 이 사이트의 기능은 딱 두 가지다. 가상 담배를 태우는 시뮬레이션, 그리고 익명 실시간 채팅. 회원가입도 없고 로그인도 없다. 접속하면 자동으로 닉네임이 붙고, 담배에 불이 붙는다.

"진짜 회사 그만두고 싶다." 옆에서 익명의 누군가가 말한다. "저도요." 그리고 담배 한 개비가 다 탄다. 3분이 지났다. 각자의 모니터 앞으로 돌아간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의 그 팀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2월 평균 서울의 짜장면 가격은 7692원이며, 배달비는 여전히 비싸다. 그러나 "저도요"라는 한 마디가 있었다. 모르는 누군가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피로를 안고 있다. 3분짜리 가상 담배 한 개비에 일상의 무게가 전해진다.

화면 속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사람들
지난 1월 15일 서울역 인근의 한 흡연구역/사진=뉴스1

'담타(담배타임)'는 본래 직장인들 사이의 암묵적 관행이다. 흡연자들이 업무 중간에 흡연구역으로 나가 5분, 10분, 때로는 20분씩 자리를 비우는 시간. 건강 위해성을 감수한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직장 문화에서는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합법적 휴식'으로 기능해 왔다.

비흡연자들은 "나는 일하는데 왜 흡연을 핑계로 시도 때도 없이 자리를 비우는가"라며 불만을 쏟아내고, 반대로 흡연자들은 "잠깐의 휴식 시간일 뿐 오히려 업무 능률이 오른다"며 반박한다. 이 논쟁은 수년째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반복되는 단골 주제였다.

누군가는 다른 방식으로 응수했다. 담배를 아예 온라인으로 만들어버린 것. '온라인 담타' 개발자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링크드인 계정을 통해 "담타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궁금하거나, 합법적인 쉬는 시간처럼 느껴져 부러웠다면 이제 온라인 담타를 즐겨보라. 건강에도 해롭지 않다"며 사이트를 공개했다.

사이트 화면 중앙에는 실시간으로 타고 있는 담배 이미지가 표시되며, 화면을 터치하면 가상 담배를 태울 수 있다. 테마별 흡연실도 있다. 대학교 앞, 야구장, 회사 옥상, 지구 밖, 침묵의 방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담배의 필터를 마우스로 클릭하고 있으면 담배가 더 빨리 타고, 끝부분을 더블클릭하면 재도 털 수 있다. 보통 3분 내외면 한 대를 피운다. 그 3분 동안 채팅창에는 이런 문장들이 흘러간다. "차장 보기 싫다." "우리 회사보다 빌런 많은 곳은 없다." "오늘 회의 3시간이었어요." "저도요." "저도요." 담배가 아니라 '공감'이 오간다.

담배 감성을 원하는 비흡연자의 심리
이란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한 시위자가 지난 1월 14일 독일 베를린에서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시의 포스터에 붙인 불로 담배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고 있다. 자신을 캐나다에 거주하는 이란 난민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의 사진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그것으로 다시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아들인 뒤 담배를 버리는 모습으로 전 세계에서 이란 저항의 상징으로 떠올랐다./AP=뉴시스

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담배 타는 화면을 보며 3분을 보내는 걸까. '의례적 전환(ritual transition)' 욕구로 풀이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업무 모드와 비업무 모드 사이에 작은 의식이 필요하다. 흡연자에게 그 의식은 물리적으로 명확하다. 자리를 이탈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야외 공기를 마시고, 담배 연기를 내뿜고, 돌아온다. 시작과 끝이 있는 '의례'다.

비흡연자에게는 그 의례가 없다.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화장실을 다녀올 수도 있지만, 흡연처럼 '공식적으로 허용된 이탈'의 느낌은 아니다. 온라인 담타는 그 빈 자리를 채웠다. 3분간 화면 속 담배를 태우는 행위는 실제 흡연의 건강 피해 없이, 흡연이 제공하던 심리적 기능을 모방한다.

온라인 담타 속 익명 채팅에는 직급도, 이름도, 회사명도 없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피로감만이 공통 언어다. 비흡연자가 담배 감성을 원하는 건 담배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 뒤에 숨어 있는 '허락된 이탈'과 '낮은 문턱의 연대'다.

초경량 인플레 공감 '거지맵'

비슷한 결의 '초경량 공감 커뮤니티'도 확산세다. 소셜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거지맵'은 3월 블로그 언급량이 2360건으로 급증하며 온라인 담타, '음식만안와요'와 함께 MZ 세대의 관심사로 올라왔다.

저렴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점 정보를 공유하는 거지맵닷컴.

'거지맵'은 1000원부터 9000원대까지 초저가 식당 정보를 지도 형태로 공유하는 서비스다. 이름부터 거침없다. '거지'라는 단어를 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것을 공동의 언어로 삼는다. 서울을 넘어 부산·대구·경북·전라·충청권 등 전국 각지로 정보가 공유되면서 이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음식 서비스 물가지수는 약 24.7% 상승했고, 엥겔계수도 30%를 넘어서며 199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청년들은 '무엇을 먹을까'가 아니라, 오늘 하루 '얼마로 버틸 수 있을까'를 먼저 계산한다.

MZ세대가 고물가를 버티는 방식
실제 주문이나 결제, 배달이 발생하지 않는 '음식만안와요.com'

'음식만안와요'는 배달앱 이용 과정 자체를 그대로 재현한 가짜 배달 앱이다. 담타의 가상 흡연처럼 실제 음식 주문은 이뤄지지 않는다. 음식 사진을 고르고,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 화면까지 가보는 경험만 제공한다. 고물가에 배달을 끊었지만, 그 행위 자체가 주는 위안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다. 배달 앱을 켜는 순간의 설렘, '뭐 시켜 먹을까' 고르는 과정의 즐거움을 '무해하게' 경험하게 해준다.

이들 세 가지 서비스의 공통점은 일단 무겁지 않고 가볍다는 점이다. 회원 가입 절차가 없거나 최소화돼 있고, 앱 설치가 필요 없으며 돈도 들지 않는다. 기능이 단순하고, 목적이 명확하다. 무엇보다 혼자 하지 않는다. '초경량 공감 커뮤니티'다.

과거 세대의 '절약' 문화와는 다르다. 과거의 절약은 조용히, 홀로, 부끄럽게 이뤄졌다. 지금의 절약은 공개적이고, 유머러스하며, 함께한다. '거지맵'이라는 이름 자체가 절약을 수치심 대신 자조적 유머로, 고립 대신 연대로 전환한다. MZ세대가 고물가 시대를 버티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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