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연쇄 살인' 사건 이후 유사한 수법의 약물 범죄가 잇따르면서 모방 범죄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마약류 의약품 처방이 해마다 늘어나는 가운데 처벌 강화와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치료 목적 환자들까지 위축시키는 과도한 규제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 부천원미경찰서는 지난 9일 살인미수 혐의로 태권도장 관장 20대 여성 A씨와 직원 40대 여성 B씨를 구속했다. 이들은 B씨 남편에게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탄 술을 먹여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자신이 처방받은 약물을 빻아 술에 넣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지난달에는 서울·경기 일대에서 남성 4명을 상대로 약물을 먹여 잠들게 한 뒤 금품을 빼앗은 20대 여성도 구속됐다.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검사에서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 성분이 검출됐다.
연이어 발생한 이 사건들은 '강북구 모텔 연쇄 살인' 사건과 유사한 수법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키우고 있다. 김소영(20)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을 탄 음료를 남성들에게 먹여 2명을 살해하고 4명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범행에 쓰인 약물은 김소영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이유로 직접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은 불안장애·불면증 치료 등에 사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술과 함께 복용하거나 과용하면 의식을 잃거나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
특히 범행 수법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온라인 상에서는 '김소영 레시피'라는 제목으로 범행에 사용된 약물 종류와 조제법 등이 게시되기도 했다. 추가 모방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최근에는 의료용 마약류 처방 건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에 따르면 의료용 마약류 처방량은 2022년 18억7359만정에서 2025년 19억5714만정으로 3년동안 4.5% 증가했다. 처방환자 수도 △2022년 1946만명 △2023년 1990만명 △2024년 2001만명 △2025년 2019만명 등으로 증가세다.
마약류 의약품을 악용한 범죄가 잇따르자 국회에선 처벌 강화 움직임도 이어진다. 지난달 3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발의한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에는 살인·강도·성범죄 등 범죄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마약류를 몰래 투약하거나 제공할 경우 가중 처벌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약물 범죄 대응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실제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위축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병철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신과 의약품 규제는 이미 엄격한 편"이라며 "약물을 악용한 범죄자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의 정상적인 약물 치료까지 제한하는 규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