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덮친 사냥개에 맞서다 폐까지 뜯긴 반려견…서귀포시 대응 '분통'

윤혜주 기자
2026.05.13 09:18
지난달 21일 오전 8시쯤 반려견 두부와 함께 산책 중이던 A씨는 어디선가 나타난 사냥개들의 공격을 받았다/사진=A씨 제공
사냥개 2마리를 공격을 받아 사투를 벌이던 A씨와 두부에게로 사냥개 1마리가 더 나타나 공격하기 시작했다/사진=A씨 제공

늘 걷던 집 앞 산책길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멧돼지를 잡는 사냥개들이 민가를 덮치면서 애지중지 키우던 반려견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했다.

지난달 21일 오전 8시쯤 제주 서귀포시의 한 주택가. 아침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A씨와 반려견 두부 앞에 검은 사냥개 2마리가 예고없이 나타났다. 사냥개들은 망설임없이 두부를 덮쳤고, A씨는 놀라 뒤로 넘어졌다. 다시 일어선 A씨는 팽팽해진 목줄을 잡아당기며 두부를 구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곧바로 어디선가 검은 사냥개 1마리가 더 나타났고, 다른 2마리와 합세해 두부를 공격했다.

해당 동네엔 마당 딸린 큰 집이 많아 대부분 개를 키우고 있다보니, A씨는 혹시 모를 개물림 사고나 싸움에 대비해 항상 골프채를 챙겨 산책을 나간다고 한다. 당시에도 A씨는 오른손으로는 두부 목줄을 잡아당기면서 왼손에 든 골프채로 사냥개들과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흰 사냥개 1마리와 황색 사냥개 1마리가 합류하더니 두부의 폐까지 물어뜯었다. 결국 두부는 쓰러졌다. A씨가 거의 기절 상태에 다다랐을 때쯤 엽사가 총을 메고 나타났다. 엽사도 흥분한 사냥개들을 어찌하지 못하다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겨우 제압했다고 한다.

동물병원으로 옮겨진 두부. A씨는 "엽사가 두부를 데리고 병원에 가겠다고 했다. 저는 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따라갔다. 엽사가 알고 있는 병원에 가다 보니 이동 시간만 40분이 걸렸다. 출근 시간이 겹쳐서 너무 막히기도 했다"며 "갔더니 큰 동물병원에 가야 한다고 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고, 또 거절당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했다./사진=A씨 제공

이후 두부는 동물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사건 발생 2시간 만인 당일 오전 10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폐 내부에서 혈액이 응고돼 피를 뽑아내야 했지만 골든타임을 놓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저희 강아지는 10kg밖에 안 된다. 저를 지키려고 개들이랑 끝까지 싸우다가 죽은 것"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엽사는 서귀포시가 멧돼지 소탕을 의뢰한 포획단 소속으로, 당시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민원에 사냥개들과 멧돼지 소탕 작전을 벌이던 중이었다.

그러나 두부의 폐사 소식에도 서귀포시에선 단 한 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A씨는 "사건 당일 폐사했다고 밝혔지만 그 다음 날 오후가 될 때까지 연락이 없었다. 그저 서귀포시는 이번 사건에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엽사 개인 선에서 마무리 짓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엽사가 서귀포시 소속 포획단이라는 사실도 A씨가 캐물어 알아냈다.

A씨는 엽사가 처벌받길 원한다는 내용으로 경찰에 신고를 접수했다. 그러자 서귀포시에서 포획단이 가입한 수렵 보험금이라는 게 있으니 도와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A씨 또한 두부를 구하려고 사투를 벌이면서 엉덩방아를 찧어 엉치뼈가 온전치 못한 상태다. 불면증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있다. 시는 신체적, 정신적 치료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다.

A씨의 반려견 두부의 모습/사진=A씨 제공

A씨는 "보험금이 문제가 아니다. 5살짜리 제 자식이 죽었다"며 재발 방지 대책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씨는 "엽사는 사냥개들을 풀어도 민가 쪽으로 올 수 없도록 해야했다. 서귀포시는 멧돼지 소탕 작업에 대한 주민 안내도 하지 않았다. 이웃 대부분이 반려견을 키우는데 이같은 일이 되풀이 되어선 안 된다"며 "무지개 다리를 건넌 두부를 위해서라도 저희 동네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서귀포시 청정환경국 기후환경과장은 멧돼지 소탕을 위한 출동 시 엽사 1명당 사냥개 몇 마리가 배정되는지 등 기준이 있냐는 질문에 "기후에너지 환경부 지침상 엽사 1인당 2마리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다만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에 사냥개들이 총 5마리 등장한 것에 대해선 "CCTV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A씨는 사건 발생 당일 시청에 찾아가 청정환경국 팀장에게 영상을 보여줬다고 했는데, 중요 사안에 대한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후환경과장은 "지금 보험사에서 조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일(14일) 따로 브리핑을 할 예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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