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를 태우지 않은 사설 구급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하다 보행자를 숨지게 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응급환자 이송을 위해 마련된 긴급자동차 특례가 일부 사설 구급차 운전자의 편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중랑경찰서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사설 구급차 운전자 20대 남성 A씨에게 도로교통법상 난폭운전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 위반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A씨는 지난 14일 오후 2시20분쯤 서울 중랑구 상봉역 인근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70대 여성을 들이받은 혐의를 받는다. 차에 치인 여성은 병원 이송 중 숨졌다. 해당 구급차는 요양병원에 있는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이동 중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가 응급상황이 아님에도 사이렌을 켜고 신호를 위반해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긴급자동차 특례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A씨에 대한 구속 영장도 신청할 방침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구급차는 긴급자동차에 포함돼 긴급한 용도로 운행할 경우 특례를 적용받는다. 신호위반, 속도제한 등 교통법규를 어기더라도 범칙금·과태료를 면제받고 사고 시에도 형이 감면된다. 구급차가 긴급자동차 특례 규정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사이렌을 울려 응급상황임을 알려야 한다.
문제는 일부 사설 구급차 운전자들이 응급상황이 아닌데도 사이렌을 켜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설 구급차의 운행기록 관리도 허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147개 민간이송업체의 구급차를 전수 점검한 결과, 80개 업체(54.4%)가 운행기록을 누락하거나 출동 기록을 제출하지 않는 등 관련 서류를 부실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지난달 강원 원주에서도 환자를 태우지 않은 사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과속 주행하다 승용차와 충돌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고 여파로 구급차가 도로에서 벗어나며 길을 지나던 중학생 B군을 덮쳤고, B군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긴급 이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사고 이후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는 '보행자 사망사고 관련 긴급자동차 특례 남용 관리를 강화 및 교차로 안전대책 마련 촉구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사고 당시 사설 구급차는 응급환자를 이송 중이지 않았음에도 긴급자동차라는 명분을 사적으로 악용해 내리막 도로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았으며 우회전 전용 차선에서 직진했다"며 "비응급 상황 긴급차량 특례 사용 관리를 강화해달라"고 했다.
전문가는 긴급자동차 특례 규정 남용이 응급환자 이송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응급상황이 아닌데도 사이렌부터 켜는 일부 사설 구급차들 때문에 시민들은 신뢰를 잃고 진짜 위급한 순간에 양보하길 주저할 것"이라며 "심리 검사 등 사설 구급차 운전자 채용 요건을 강화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