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98년 6월 14일, 한국과 멕시코의 월드컵 첫 경기가 열리던 날이었다.
전반 27분 하석주가 선제골을 넣으며 환호성이 터지던 시각,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사바이 단란주점에서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단란주점의 여주인과 그의 지인 2명, 총 3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범인은 이날 단란주점을 방문한 3명의 남성 손님이었다.
죽은 척하며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목격자도 있었지만, 범인들은 잡히지 않았다. 이 사건은 2013년 15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영구미제로 남았다.
사건이 알려진 것은 14일 새벽 3시께다. 단란주점의 손님이었던 여성 박 씨가 하반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피를 철철 흘리며 계단을 올라왔다. 당시 근처에서 손님을 태우려고 대기 중이던 택시 기사가 박 씨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계단을 내려가자 주점 입구부터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사건이 벌어진 1번 방의 문을 열었을 때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다.
주점의 여주인(40)과 그의 지인인 택시 기사(38), 손님 등 3명이 모두 사망한 채 발견됐다. 여주인의 허벅지와 등은 칼에 깊숙이 찔렸고, 입도 13㎝ 가량 찢어져 있었다. 택시 기사의 몸에도 칼에 찔리거나 베인 흔적이 17군데나 있었다.
가장 끔찍하게 사망한 사람은 여성 손님이었는데, 그는 목이 반쯤 잘린 상태로 이마에는 마치 발로 짓밟힌 듯 선명한 신발 자국이 나 있었다.
범인들은 자신들의 혈흔이나 체액, 족적 등을 감추기 위해 사건 발생 직후 수도꼭지를 틀어 1·2번방 바닥을 물로 흥건히 적셔놨다. 또 감식 방해를 위해 유리컵과 접시 등을 잘게 부숴 바닥에 뿌렸고 신문지로 집기에 남겨진 지문을 닦아낸 후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감식반원들이 범인들의 것으로 보이는 4장의 유류 지문, 담배꽁초 24개, 운동화 족적 3개 등을 채취했지만 훗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정식 인정받은 흔적은 운동화 족적 3개가 전부였다.
범인들이 주점에 입장한 13일 저녁 10시께 자리를 비운 여주인 대신 여주인의 친언니가 가게를 보고 있었다. 친언니에 따르면 20대로 추정되는 남성 3명이 1번 방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접대부를 부르지 않고 양주와 과일 안주를 주문해 먹었다.
20분 후, 여주인과 안면이 있는 여성 손님이 박 씨(목격자)와 함께 맥주 한잔을 하러 주점을 찾았다. 여주인이 자리에 돌아와 친언니와 교대한 시간은 오후 11시 50분께였다. 범인들은 최유나의 '흔적', 박강성의 '장난감 병정', 박상민의 '하나의 사랑',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 등 서정적인 가사의 인기 발라드곡들을 연이어 부르고 있었다.
14일로 넘어가는 자정, 여주인의 지인인 택시 기사가 월드컵을 보기 위해 주점에 잠깐 들렀다. 친언니가 주점에 전화한 새벽 1시 반까지도 아무 일도 없었다. 경찰에 신고가 들어온 시간이 새벽 2시 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범행은 새벽 1시 반에서 2시 반까지 1시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목격자도 있고, 지문 등 증거까지 남았던 이 사건은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사건이 발생한 1998년엔 방범용 CCTV가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였고 주점 내부에도 CCTV가 없었던 탓에 범인들의 얼굴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또 여주인과 박 씨를 제외하면 목격자도 없었다. 사건 당일 월드컵 첫 경기가 열렸던 때라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던 탓이다. 발견된 지문 역시 모두 주점 관계자들의 지문이었다. 당시 과학기술로는 채취된 시료 중 DNA를 뽑아내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범행 동기 역시 확실치 않았다. 금품을 노린 범죄라고 하기에는 택시 기사의 금시계, 금반지 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사라진 것은 여성 피해자들의 목걸이 2개와 팔찌 1개, 6만6000원가량의 현금과 카드 정도였다.
강도살인이 아니라 택시 기사를 노린 청부살인 등 계획범죄의 가능성도 제기됐다. 범인들이 피해자들의 손을 묶을 케이블타이와 살인 도구인 칼이 미리 준비돼있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청부살인을 뒷받침할 근거는 찾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범행 자체는 우발적이지만 범인들은 일반인이 아니라 과거에 살인을 해본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라고 결론지었다. 범죄 형태가 너무 잔인하고 대범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등의 특별한 경험이 없이는 힘든 범행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사건 발생으로부터 만 15년이 지난 2013년 6월 14일 자로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하지만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형사들은 여전히 개인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