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맨 변호사, 카메라 앞으로…'법정 밖 재판' 사법 신뢰 지키려면

이혜수 기자, 오석진 기자, 양윤우 기자, 정진솔 기자
2026.07.27 07:00

[MT리포트]법정 밖으로 나온 재판 (下)

[편집자주] 법원을 찾지 않아도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영상재판 덕이다. 도입된 후 지금까지 진행 건수가 25만회를 넘었다. 접근성과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많지만 재판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영상재판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르포]영상재판 속 넥타이 맨 변호사 '엄숙'…재판부 혼잣말까지 들린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있는 영상재판 전용법정 입구 /사진=오석진 기자

#지난 16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영상재판 전용법정의 영상 방청석 화면에 두 변호사의 얼굴이 크게 나타났다. 변호사들은 각각 실제 법정처럼 셔츠와 넥타이를 매고 출석했다. 재판 말미 기일을 지정하면서 판사가 "원고대리인 괜찮으시냐"고 묻자, 원고 측 변호사는 약 2초 뒤 "예 가능합니다"라고 답했다.

원거리에서 열리는 영상재판이었으나 실제 법정처럼 정돈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절차가 진행됐다. 음향시설도 좋아 재판부가 혼잣말하는 것도 들릴 정도였다.

서울중앙지법에는 영상재판 전용법정이 5개 마련돼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재판 당사자가 먼 지역에 있는 재판에 참여할 때 주로 사용한다. 지난 16일 영상재판 전용법정 1~3호실엔 각각 △창원지법 통영지원 △춘천지법 홍천군법원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에서 이뤄지는 재판에 참여하기 위해 재판 당사자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헤드셋을 끼고 재판에 참여했다.

영상재판 전용법정 5호실은 영상재판을 볼 수 있는 방청 전용실이다. 영상재판 역시 일반 재판과 마찬가지로 공개재판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방청을 원하는 국민들이 볼 수 있다. 이날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이뤄지는 영상재판이 열렸다.

방청 전용실에 마련된 방청 가능 자리는 총 6석이다. 화면을 켜면 영상재판 전용법정 시청이라는 녹색화면이 뜨고 '※반드시 재판일정을 확인하시고 방청하고자 하시는 재판부에만 입장하시기 바립니다' '※입장시 마이크는 반드시 음소거하시기 바랍니다' 등의 주의사항이 나온다. 카메라도 당연히 켜선 안된다.

법원 소속 공무원이 장비 이용을 도와주고 있으나 별도 방호관은 없었다. 일반 법정에서는 방호관이 상시 대기하면서 소란을 피우거나 핸드폰 소리가 울리면 제지하는 등 재판의 원활한 진행을 돕는다.

영상재판의 질이 항상 좋은 건 아니다. 개인장비로 영상재판에 참여하는 경우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잦다. 실제 지난 16일 기자가 직접 방청한 재판 중 당사자가 개인장비를 통해 접속한 한 영상재판에서는 재판부가 원고 말이 들리지 않아 "잘 들리지 않는다"며 재차 답변을 요구하기도 했다. 원고와 원고 측 변호사 말이 겹치면서 정리에 나서기도 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그림자가 들어 당사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도 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장비 문제로 기술적 지원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여전히 있고, 화상장치를 이용하면 일반인들이 카메라 뒤에서 뭘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며 "재판 당사자 외에 한 공간에 있지 못하도록 고지는 하지만 실제로 지켜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접근 편하게, 절차는 엄격하게…선진국 영상재판 이렇게 한다
2020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코로나19 대응 방안으로 원격영상재판이 시행되고 있다. / 사진=머니투데이DB

호주·싱가포르 등 여러 선진국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영상재판을 정규 재판 방식의 하나로 정착시켰다. 선진국은 영상재판을 단순한 화상회의가 아니라 실제 법정과 같은 규율이 적용되는 온라인 법정처럼 설계했다. 특히 공개재판 방식과 접속 장소·복장·예절까지 세부 기준을 마련해 재판의 품격과 절차적 권리가 훼손될 가능성을 줄였다.

26일 해외 주요 법원의 연례보고서와 실무지침을 종합하면 싱가포르 법원은 코로나19가 확산했던 2021년 형사·민사 본안재판 외 절차의 90%, 민사 본안재판의 60% 이상을 영상재판으로 진행했다. 사람과 사람 간 접촉이 엄격히 금지됐던 시기, 대규모 사건을 영상으로 처리하면서도 재판을 중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된 현재 싱가포르 사법부는 사건의 성격에 따라 영상과 대면재판을 구분하고 있다. 서면증거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신청사건에선 영상심리를 계속 활용한다. 반면 증인 반대신문이 필요한 민사 본안재판은 대체로 법정에서 진행한다. 모든 재판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재판에 적합한 사건을 골라 활용하는 것이다.

호주 연방법원도 화상 회의 플랫폼 Webex를 영상재판에 적극 사용하고 있다. 재판부가 허가하면 당사자와 대리인, 증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링크를 통해 온라인 법정에 들어가 재판을 지켜볼 수 있다.

이들 국가가 코로나19 직후 곧바로 영상재판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자소송 기반을 미리 구축해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1997년부터 전자접수시스템(EFS)의 시범 운영을 시작해 2000년 본격 운영·의무화했다. 2013년에는 이를 통합 전자소송·사건관리 시스템인 'eLitigation'으로 교체해 민사소송의 접수와 송달, 사건기록 조회를 하나의 디지털 환경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호주 연방법원은 2001년 준비절차와 중간신청 등을 온라인 메시지로 처리하는 웹 기반 'eCourt Online Forum'을 시범 운영했다. 2014년부터는 종이기록을 대체하는 전자 사건기록(ECF)의 전국 도입을 시작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3월에는 실시간 원격심리를 도입했다.

코로나19는 전자소송 기반 위에서 영상재판을 대폭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싱가포르는 2020년 임시조치로 영상재판의 범위를 넓힌 뒤 2021년 법률을 제정해 상시적인 영상재판의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재판부가 사건별 사정을 따져 공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영상이나 서면만으로 심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 국가들이 현재까지도 영상재판을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법 접근성 때문이다. 국토가 넓은 호주에서는 당사자와 변호인, 증인이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준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싱가포르 정부도 재판 당사자들이 이동과 대기 때문에 업무에서 이탈하는 시간을 줄이고 재판기일도 더 유연하게 잡을 수 있다는 이유로 영상재판을 활용한다.

이들 국가에서 영상재판 제도가 큰 문제 없이 안착한 건 실제 법정에 준하는 통제 장치를 정교하게 마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호주 연방법원은 온라인 방청을 허용할 때 사건의 성격과 공익적 관심, 예상 방청 수요, 공정한 재판에 미칠 영향, 당사자·증인 보호, 비밀정보 유출 위험 등을 고려한다. 재판부는 공개 범위와 시간을 제한할 수 있고 무단 녹음·녹화는 법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엄격히 금지된다.

싱가포르는 영상재판을 더욱 세밀하게 통제한다. 재판 당사자는 조용하고 사적인 실내에서 접속해야 하고 화면 밖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법원에 알려야 한다. 신분증을 카메라에 보여 신원을 확인하며 카메라는 원칙적으로 재판 내내 켜둬야 한다. 운전하거나 걸어 다니면서 재판에 참여하는 것도 금지된다. 복장과 예절도 실제 법정과 동일하게 적용된다. 부적절한 옷을 입으면 재판 참여가 제한될 수 있다.

강동원 전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는 '형사 영상재판의 쟁점 및 허용범위 확대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영상재판 확대는 단순히 화상회의 프로그램의 도입과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재판 절차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며 "해외 사례처럼 영상재판을 편한 접속이 아니라 '법원이 관리하는 온라인 법정'으로 설계할 때, 법정 밖 재판도 법정 안 재판과 같은 절차적 무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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