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 도박에 처음 발을 들이는 주요 통로 중 하나는 '친구'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연결된 또래 집단에서 도박이 일종의 '놀이'처럼 번지면서 위험성에 대한 경계도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8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소년의 사이버도박 경험 실태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도박 경험 청소년' 505명 가운데 60% 이상은 또래 네트워크를 통해 처음 도박을 접한 것으로 조사됐다.
친구 한 명의 도박 경험이 또 다른 친구에게 퍼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조사 대상 청소년의 84%는 '도박하는 친구를 보고 다른 친구가 따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절반 이상은 '학교 내 의도적으로 사이버도박을 퍼뜨리는 친구를 본 적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 한 학교에서 수십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도박 사실을 신고하는 사례도 나왔다. 경찰청이 지난 6월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를 받은 결과 강원특별자치도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40여명이 도박 사실을 신고했다. 인근 다른 고등학교에서도 20여명이 한꺼번에 자진신고했다.
청소년들이 도박을 시작하는 데는 돈보다 '재미'가 크게 작용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2025 청소년 도박 실태조사'에서 도박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청소년의 58.5%는 도박을 시작한 이유로 '재미있을 것 같아서'를 꼽았다. '친구와 놀기 위해서'라는 응답은 32.5%, '친구 또는 선후배가 추천해서'라는 응답도 21.7%였다.
친구의 권유나 호기심으로 도박을 시작했다는 불법도박 경험 청소년들의 실제 진술도 잇따른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제6차 불법도박 실태조사'에서 A군은 "도박 시작의 계기는 친구의 영향"이라며 "친구가 도박 사이트에서 돈을 충전·베팅하는 모습을 본 뒤 호기심이 생겼고, 직접 가입도 도와줬다"고 말했다. B군 역시 "친구가 알려준 도박사이트를 통해 처음 도박을 접했다"고 했다.
재미와 호기심으로 도박을 접한 경험이 반복적인 도박 행위로 이어지는 모습도 나타났다. C양은 "오락실처럼 소액으로 시작했는데, 게임 자체에서 재미를 느꼈다"며 "돈을 잃더라도 언젠가는 딸 수 있다는 생각에 계속 참여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도박을 범죄나 심각한 일탈이 아닌 또래끼리 즐기는 놀이처럼 받아들이는 점을 확산 배경 중 하나로 꼽았다. 게임이나 확률형 아이템 등에 익숙한 데다 주변 친구들까지 도박을 하면 이에 대한 심리적 경계가 더욱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중·고등학생들의 경우 신체·정서 발달 과정상 도덕성이 약화하거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시기"라며 "또래 집단이 도박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그 위험 인식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일상적으로 도박 광고에 노출되는 환경도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권일남 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도박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앱 광고나 불법 사이트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도박 광고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