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전북 익산에서 24시간 잠복해 범인을 잡고 올라왔어요."
지난 16일 경기 수원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단에서 만난 광역범죄수사1팀장 강석범 경감의 얼굴에는 피로보다 보람이 묻어났다. 불과 하루 전까지 익산에서 팀원들과 차 안에서 밤을 지새우며 범인을 기다렸다는 강 경감은 "범인이 나타나는 순간의 짜릿함과 붙잡았을 때의 보람은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 경감은 최근 1년 동안 대구도 30차례 넘게 오갔다. 대구를 거점으로 활동한 불법 사금융 조직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강 경감이 이끄는 경기남부청 광역수사단 광역범죄수사1팀은 최근 대구 지역 불법 사금융조직을 일망타진했다.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해당 조직원 50명을 검거해 이 가운데 24명을 구속했다. 해외로 도주한 총책 A씨(33)를 포함한 조직원 10명 가운데 6명도 국내로 송환했다. 경찰은 나머지 4명도 송환 절차를 밟고 있다.
A씨 일당은 범죄단체 가입·활동과 대부업법·채권추심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다. A씨는 대구 지역 선후배들을 끌어모아 불법 사금융 조직을 꾸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대구 지역 미분양 아파트를 단기로 빌려 사무실로 사용하고 3~4개월마다 장소를 옮기는 방식으로 수사망을 피했다.
범행 대상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조직은 합법적인 대출 플랫폼을 통해 확보한 개인정보를 토대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소액 대출을 유도했다. 이 방식으로 최고 연 4만9000%에 달하는 이자를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돈을 빌려주는 조건으로 피해자의 개인정보뿐 아니라 직장 동료와 가족·지인의 연락처까지 받아냈다. 제때 돈을 갚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 허위 사실을 퍼뜨리거나 협박성 연락을 반복하는 식으로 불법 추심도 일삼았다. 한 피해자에게는 하루 300차례 넘게 협박성 전화를 건 사례도 있었다.
여러 관할 구역에 걸쳐 발생한 사건을 수사하는 광역수사단 형사들에게 장거리 출장은 일상이다. 강 경감은 "전국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만큼 '끝까지 잡겠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며 "특히 피해자가 다수인 사건이 많아 광역수사단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2002년 경찰에 입직한 강 경감은 경찰 생활 대부분인 23년을 형사로 보냈다. 2009년에는 경기 북부 지역에서 약 10년간 여성 125명을 성폭행한 30대 남성인 이른바 '경기 북부 발바리'를 검거했다.
23년 동안 광역수사단 역할도 조금씩 변했다. 강 경감은 "연쇄살인범 등 강력사건을 수사하던 광역수사단은 최근 불법 사금융 등 조직적인 사기 범죄를 검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전국적으로 CCTV가 설치되는 등 수사망이 체계화되면서 강력범죄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범죄 수법이 진화해도 '반드시 잡을 수 있다'는 게 강 경감의 신조다. 그는 지난 1~5월 이른바 '상품권 사채'를 포함한 불법 사금융업체를 운영한 30대 남성 B씨를 대부업법 위반, 무고 등 혐의로 검거했다.
지난 4월 서울 동대문구 한 모텔에서는 B씨의 상품권 사채를 이용한 30대 여성이 지속적인 불법 추심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해당 사건을 언급하며 "50만원을 대출해 주고 9일 만에 8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는 경우가 있다"며 "이는 계약 무효이고 처벌 대상"이라고 말했다.
강 경감이 수개월씩 전국을 오가며 범인을 추적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피해자다. 이번 대구 불법 사금융 조직 사건에서 경찰이 확보한 피해자 진술만 300명이 넘는다. 경찰은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자가 수천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강 경감은 "불법 사금융 피해는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의 얼굴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사금융업자에 빌린 원리금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국민들이 꼭 알고 이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22일 시행된 개정 대부업법에 따라 연이율 60%를 초과하는 초고금리 대부계약과 불법 사금융업자와 체결한 대부계약은 모두 무효다. 불법 사금융에 대한 형량은 기존 징역 5년에서 징역 10년으로 강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