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 거부 무죄"…대법원, 14년 만 판결 뒤집었다[뉴스속오늘]

이은 기자
2026.11.01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18년 11월 1일.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양심'을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던 2004년 판결 이후 14년 만에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사진=뉴스1

2018년 11월 1일.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양심'을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던 2004년 판결 이후 14년 만에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날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증인 신도 오승헌(당시 34세)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다수 의견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쟁점은 종교·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가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있는지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대4 의견으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라면 병역법 88조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기피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정당한 사유 판단을 할 때에는 병역법의 목적과 기능, 병역 의무의 이행이 헌법을 비롯한 전체 법질서에서 가지는 위치, 사회적 현실과 시대적 상황의 변화 등은 물론 피고인이 처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의무에 응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양심을 지키기 위해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개인의 인격과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병역 의무 불이행에 따른 어떤 제재도 감수하겠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형사처벌 등 제재를 통해 집총과 군사 훈련을 수반하는 병역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위협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인정해야만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국민 다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 존재를 국가가 언제까지나 외면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양심'은 "구체적 사건에서 그 양심이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며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 과정, 학교생활, 사회 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판단은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8명이 내렸다. 이동원 대법관은 파기환송이라는 결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국가안전보장에 우려가 없는 상황을 전제로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수 있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반면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양심적 병역 거부가 국가안전보장과 국방의 의무 실현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며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입영 거부에 1·2심 징역 1년 6개월…대법원 파기환송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오승헌(가운데)씨가 상고심 판결을 받기 위해 2018년 11월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사진=뉴스1

오씨는 2013년 7월 육군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일인 2013년 9월 24일부터 3일이 지나도록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1·2심 재판부는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가 처벌 예외 사유인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오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앞서 대법원은 2004년 '양심'이 병역기피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종교적 양심의 자유가 국가 안전 보장이라는 병역 의무의 헌법적 법익보다 우월하지 않고, 그에 따라 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법원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병역법 88조1항을 적용해 유죄를 선고해왔다. 해당 조항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는 통상 징역 1년 6개월이 선고됐다. 병역법 시행령상 병역 면제가 될 수 있는 최소 실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한다며 14년 만에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 선고 이후 오씨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용감한 판결에 정말 감사드린다"며 "국민의 수준 높은 관용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끝난 건 아니고, 대체복무 도입이 남았는데 병역 기피 (수단으로) 오남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알고 있다. 우려 불식을 위해 성실히 복무하겠다"고 말했다.

오씨를 변호한 오두진 변호사는 "그동안 감옥밖에 갈 데가 없었던 청년들이 이제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범죄자 신분이 아닌 상태로 (살 수 있게 됐다)"며 "대법원에 그 점에 대해 감사드린다"는 소감을 밝혔다.

총 들지 않는 사회복무요원도 거부…"정당한 사유 인정 어렵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모든 병역 거부가 정당한 사유로 인정된 것은 아니다.

2023년 대법원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거부한 여호와의증인 신도 A씨에 대해서는 병역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총기류 사용 등 군사 훈련을 하지 않는 사회복무요원 복무는 '양심'을 본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장애 등으로 징병 신체검사에서 4급을 받은 여호와의증인 신도 A씨는 2014년 6월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다 소집해제를 약 6개월 앞둔 2015년 12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출근을 거부했다. 이후 그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2심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익 목적의 행정지원업무에 복무하는 것이 종교적 양심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후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기존 법리를 적용해 사건을 파기 환송했지만, 검찰이 다시 상고하면서 재상고심이 진행됐다.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사회복무요원 복무 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는 "사회복무요원에게 집총(총을 쥠)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지 않는 복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이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나 본질적인 내용을 위협한다고 볼 수 없다"며 종교적 신념 등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사회복무요원 복무를 거부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36개월 전원 합숙' 대체복무제…복무 기간 현역병 2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는 2020년 10월 시행됐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8년 6월 28일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법 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을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대체복무자는 병무청 대체역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대체역 편입 여부를 결정받는다. 복무자는 교도소 등 교정시설에서 합숙하며 급식·물품 보급과 시설 관리 등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 복무 기간은 36개월로, 당시 육군 현역병 복무 기간의 2배 수준이다.

36개월의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병 복무 기간보다 지나치게 길다며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2024년 헌법재판소는 병역 기피 유인을 제거하고 형평성을 고려한 조치라며 5대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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