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맞아?" 낯선 향, 간판도 러시아어 가득...외국인들 모여드는 이곳

이현수 기자, 나유영 기자, 신홍규 기자, 여승헌 기자, 박진호 기자, 민수정 기자, 고지운 기자
입력 2026.11.08 07:00 수정 2026.11.08 07:00

[MT리포트]사장님이 된 외국인 (上)

[편집자주] 한국에 '외국인 사장님'이 늘고 있다. 같은 국적 이주민을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한 외국인 자영업자들은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단지와 주택가, 도심 등 상권이 형성된 배경과 모습도 다양하다. 하지만 관련 통계나 지원 정책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외국인 자영업자들이 바꿔놓은 지역 상권의 모습과 창업·정착 과정에서의 어려움, 정책적 과제를 짚어봤다.

우리 동네 사랑방…'외국인 사장님'이 바꾸는 동네 상권

9월30일 서울 중구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에 외국어 간판이 붙어있는 모습./사진=나유영 기자.

"우즈베키스탄 유학생이나 노동자들은 꼭 들르는 곳이에요."

서울 중구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스타사마르칸트'는 한국에 거주하는 우즈베키스탄인들의 사랑방이다. 사장 아모노씨(57)는 "특별히 모임을 운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중앙아시아인들이 모인다"며 "치료를 받으러 한국에 온 사람들이 병원에 다녀온 뒤 식사하러 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에서는 한국어보다 러시아어 간판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도 러시아어나 몽골어 간판을 단 곳이 많다. 잡화점에선 초콜릿과 향신료, 차는 물론 진공포장된 육류까지 다양한 식료품을 판매한다.

인근 조지아 음식점 '환치'에선 고려인 가족과 친구들의 생일잔치가 자주 열린다. 이곳에선 조지아 전통 만두 '힌칼리'와 꼬치구이 '샤슬릭' 등을 맛볼 수 있다. 매니저 올가씨(35)는 "환치는 고려인들의 만남의 장소"라며 "한국인 손님도 많아 한국인 입맛에 맞게 조지아 요리를 변형하고, 음식을 먹는 방법도 알려준다"고 했다.

'외국인 사장님 가게' 증가세…신규 점포, 10년 전보다 10배 ↑

/그래픽=윤선정 디자인기자.

외국인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가게가 이주민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같은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형성한 상권에 한국인 손님까지 찾아오면서 지역사회와의 교류도 넓어지는 모습이다.

외국인 자영업자 증가세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이민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내 거주 외국인의 자영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신용카드 가맹점으로 등록된 외국인 개인사업자 점포들의 가맹 등록 시점은 △2009년 36곳 △2014년 173곳 △2019년 717곳 △2024년 2101곳 등으로 집계됐다. 보고서는 "최근 (연도로) 가까워질수록 가맹점 수가 큰 폭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업종별로는 요식·유흥업이 61.5%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미용(11.1%) △음·식료품(5.9%) △교육·학원(3.9%) 등으로 나타났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72.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미국(6.2%) △캐나다(3.7%) △대만(3.1%) △유럽(2.8%) 순이었다.

1997년 처음 한국에 온 사토르아가씨(62)는 5년째 광희동에서 중앙아시아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젠 몽골타운까지 생겼고 카자흐스탄과 몽골, 키르기스스탄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가게를 찾는다"며 "한국에 처음 왔을 때보다 외국인 상권이 커진 게 체감된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이곳에서 우즈베키스탄 식당을 운영해온 아모노씨는 "처음에는 뒷골목에서 장사했는데 장사가 잘되자 비슷한 식당들이 들어섰다"며 "외국인 상인들이 모이면서 상권이 커졌다"고 말했다.

지역에 뿌리 내린 외국인 상권…"추가로 더 열릴 것"

'외국인 사장님'들의 가게는 이제 이주민들만의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지역 주민들도 단골로 찾고 이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는 등 외국인 커뮤니티를 넘어 지역사회와의 교류를 넓히는 동네 가게로 자리 잡고 있다.

튀르키예인 바를라스씨(24)가 운영하는 서울 서대문구 '챕터케밥'은 인근 고등학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단골 손님인 민한결군(17)은 "신촌에서는 여기가 1등으로 맛있다"며 "사장님과는 '브라더' 사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국내 외국인 인구가 늘면서 외국인 자영업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아지면서 생산 공장이 밀집된 지역 위주로 외국인 상권이 추가로 열릴 것"이라며 "외국인 밀집 상권이 새롭게 생겨나는 건 장단기 체류자와 이민자 증가 등이 맞물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10월8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거리 일대에서 외국인들이 시장 골목을 거니는 모습./사진=여승헌 기자.

[르포]"러시아어로 밥 먹고, 친구도 만나요"…한국 속 또 다른 고향

10월8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다문화거리의 시장 모습./사진=여승헌 기자.

# 동남아시아 출신 중년 여성이 채소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시장 골목을 걷는다. 거리에는 두리안과 무지개망고, 건두부 등 이색 식재료가 눈에 띈다. 간판은 인도네시아어와 아랍어 등으로 쓰여있다. 한 음식점에서는 인도네시아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 여성이 들고 가는 라디오에선 중국어가 들린다.

경기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인근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상권이다. 고향의 음식과 물건을 찾는 이주민들이 늘자 같은 국적의 외국인들이 하나둘 가게를 열기 시작했다.

1993년 한국인과 결혼해 귀화한 인도네시아 출신 윤설아씨(53)는 3년 전 이곳에 카페를 열었다. 윤씨는 "가게를 열기 전에도 외국인이 많은 안산을 자주 찾았다"며 "생일잔치 등 고향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9년 전 한국에 온 디미트리씨(45)는 요리사로 일하다 2020년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을 차렸다. 그는 "친척과 친구 대부분이 안산에 살고, 우리말을 하는 사람도 많아 이곳에 왔다"며 "손님 대부분이 고향 사람이라 고향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곳의 '아건네팔인도음식점'은 네팔인들의 교류 공간이다. 네팔 명절이면 8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가게를 가득 채운다. 최근 네팔에서 홍수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상인과 주민들이 힘을 모아 2000만원을 기부했다. 사장 아건씨(52)는 "홍수 피해 소식에 마음이 아파 다같이 돈을 모아 기부했다"며 "주말이면 인근 대학에 다니는 유학생들과 공장 노동자들이 식당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외국인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윤씨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많아지면서 5년 전보다 인도네시아 식당이 2배 정도 늘었다"며 "어느 나라 사람이든 고향 음식을 먹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네팔 잡화점에서 일하는 30대 타망씨도 "최근 3년 사이 네팔과 인도네시아 음식점이 10곳 가까이 생겼다"고 말했다.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의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다스트칸'에 외국인 가족이 들어가고 있다.(왼쪽), 식당 내부에 마련된 기도실/사진=신홍규 기자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에서도 중앙아시아의 정취가 느껴졌다. '한국의 중앙아시아'로 불리는 이곳의 식당과 마트에선 중앙아시아 전통 음식과 각종 양념, 향신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교 시간에는 교복을 입은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한국어로 대화하며 거리를 오갔다.

다른 지역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이곳으로 옮겨온 자영업자들도 있다. 함박마을에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을 운영하는 아민씨(29)는 부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지난해 이곳에 2호점을 열었다. 그는 "인천에는 가족과 함께 정착해 중고차 등 한국 제품을 중앙아시아로 수출하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러시아 출신 이주민이 많다"며 "부산에서 장사할 때도 이곳 사람들이 식사하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외국인 사장님의 가게는 직원들도 대부분 이민자들이었다. 아민씨의 가게에는 한국인 직원 3명과 외국인 직원 10명이 일한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직원 미르조히드씨(20)는 충북 청주의 한 대학에 다니면서 틈틈이 식당에서 일한다. 그는 "청주에는 할랄 식당이 없어 이곳에서 일하게 됐다"며 "여기는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많고 주변 식당에서도 할랄 음식을 팔아 편하다"고 말했다.

함박마을의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다스트칸'에는 전통 기도실과 웨딩홀까지 마련돼 있다. 아민씨는 "공장에서 일하는 중앙아시아인들이 이곳에서만큼은 고향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한다"며 "음식과 분위기를 최대한 현지와 비슷하게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사관에서도 이곳에서 모임을 하고, 카자흐스탄 아시안게임 대표팀이 한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동안 찾아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10월8일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의 한 식료품점 매대에 각종 양념이 진열된 모습./사진=신홍규 기자.

"공장 노동자에서 식당 사장님으로"…외국인 상권 '탄생 공식'

지난 8일 경기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거리 모습. 이국적인 과일 등이 진열돼 있다. /사진=여승헌 기자.

전국 곳곳에 형성된 외국인 상권은 탄생 배경도 제각각이다. 산업단지 일자리를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되거나, 가족 단위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한 곳도 있다. 도심의 교통 접근성과 외국인 상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민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내 거주 외국인의 자영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개인사업자 신용카드 가맹점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 안산으로 지난해 6월 기준 450개소(4.4%)로 집계됐다.

뒤이어 △경기 수원 395개소(3.8%) △서울 영등포구 358개소(3.5%) △경기 시흥 354개소(3.4%) △경기 부천 353개소(3.4%) 순이었다. 신한카드에 등록된 외국인 개인사업자 가맹점 1만323개를 분석한 결과다.

외국인 상권은 대체로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외국인들이 모여 살면서 고향 음식과 생활용품을 찾는 수요가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인들이 직접 가게를 열면서 상권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경기 안산 원곡동은 산업단지 일자리가 상권 형성의 출발점이 된 대표적인 지역이다. 인근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 등에 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면서 식당과 식료품점 등이 하나둘 들어섰다.

원곡동 다문화거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네팔 출신 아건씨(52)도 공장 노동자에서 식당 사장님이 됐다. 아건씨는 당초 한국에서 잠시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한국에 귀화한 같은 고향 출신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면서 정착했다. 그는 "2004년 한국에 들어와 공장에서 일하다 2022년 직접 네팔 음식점을 차렸다"며 "한국에 사는 네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정책적 지원도 안산 외국인 상권 성장의 배경이 됐다. 안산시는 2009년 원곡동 일대를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했다. 2024년 6월 기준 특구 인구 1만9965명 가운데 등록외국인과 외국국적동포는 1만7806명으로 89.2%에 달한다. 특구에서는 외국인 조리사 고용 추천서 발급과 다문화 음식거리 활성화, 차 없는 거리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구 지정 기간은 2027년까지 연장됐다.

공장 옆에서, 주택가에서…커지는 외국인상권

지난 8일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의 대한고려인협회 모습. /사진=신홍규 기자.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은 원곡동과 달리 주거지를 중심으로 상권이 성장한 곳이다. 고려인 등 러시아어권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정착하면서 주택가에 음식점과 식료품점, 미용실 등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을 운영하는 아민씨(29)는 먼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형을 따라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형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부산에서 식당을 열었고, 나는 어학당에 다니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식당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대표 외국인상권으로 자리잡은 광주 광산구 월곡동은 고려인들의 집단 정착과 지원 공동체가 맞물려 성장했다. 이곳은 2000년대 초 고려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음식점과 생활 상점이 늘었다. 이후 이주민들의 정착을 돕는 상담소와 교육·문화시설 등이 자리 잡으면서 주거와 소비, 공동체 활동이 결합한 생활권으로 발전했다.

서울 중구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는 외국인 상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심형 상권이다. 과거 동대문 일대에서 사업하던 중앙아시아 출신 상인들이 자리 잡으면서 음식점과 식료품점 등이 들어섰다. 이후 외국인 노동자와 유학생들이 모여들면서 상권이 확대됐다. 동대문 일대의 높은 교통 접근성도 상권 성장의 배경이 됐다.

이곳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사토르아가씨(62)는 "우즈베키스탄에서 1997년 사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며 "앙고라 양말 판매부터 식당, 중앙아시아 택배 사업까지 여러 업종을 거쳐 지금의 가게를 열었다"고 말했다.

"생계 위해, 꿈 찾아"…한국에서 '사장님'된 이유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사장님'이 된 이유도 저마다 달랐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고향 음식을 알리기 위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각자의 꿈을 안고 한국에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모노씨(56)는 "고향에서도 주방장으로 일했다"며 "한국에 와보니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많은데 고향 음식을 파는 식당이 없어 직접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중국 국적 박춘월씨(61)는 "식당과 건설 현장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하며 돈을 모았다"며 "언젠가 가게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다 2016년 식당을 열었다"고 말했다.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가 사장님이 된 사례도 있다. 튀르키예 출신 바를라스씨(24)는 대학 재학 중 등록금이 부족해 휴학한 뒤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창업 자금을 모았다. 현재 서울에서 7개월째 케밥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별 이주민의 특성과 정착 배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외국인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설동훈 전 한국이민학회장(전북대 사회학과 교수)은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식당이나 식료품점 등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다"며 "이민자가 늘어날 때의 상권 형성 과정은 지역마다 다르게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 앞으로 이런 외국인 상권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상권의 성격은 주민들의 특성이 반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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