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복식 창업정책, 기업의 '핏'에 맞춰야

기성복식 창업정책, 기업의 '핏'에 맞춰야

김우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글로벌협력처 홍보팀장
입력 2026.11.08 07:00 드롭다운 아이콘 수정 2026.11.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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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현의 위인사이트(We-in-Sight) 제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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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 강력하고 다양한 창업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예비창업패키지부터 시작해 초기창업패키지, 창업도약패키지, 그리고 중소벤처기업부의 대표적인 R&D(연구개발) 지원 사업인 디딤돌 사업에 이르기까지, 각 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쏟아내는 지원 사업의 가짓수만 해도 수천 개에 달한다. 자금 가뭄에 시달리는 스타트업에게 이러한 정책자금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다.

수많은 지원 정책이 존재하지만, 정작 사업의 성격과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획일적이다. 일정한 자격 요건과 정형화된 사업비 집행 항목, 틀에 박힌 멘토링과 교육 프로그램은 마치 백화점 매장에 대량으로 걸려 있는 '기성복'을 연상시킨다.

기업마다 필요한 기술과 시장, 마케팅 전략이 전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정책이라는 기성복에 기업의 몸을 강제로 맞춰야 한다. 정장 바지 길이가 길거나 소매가 맞아떨어지지 않아도 지원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구겨 넣는 격이다. 불필요한 집행 증빙과 형식적인 교육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본연의 혁신에 집중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구조, 이것이 오늘날 '기성복형 창업 정책'이 가진 한계다.

오늘날의 시장은 과거와 비할 수 없이 복잡하고 다변화되었다. AI, 바이오, 딥테크, 로보틱스, ESG 등 산업군마다 성장 스펙트럼이 완전히 다르고, 창업가가 마주하는 난관의 종류도 제각각이다. 이러한 다변화 시대에 백화점식 기성복 지원 체계로는 결코 세계적인 유니콘 기업을 길러낼 수 없다.

이제 창업 정책은 대량 생산된 기성복을 뿌리는 행정에서, 기업의 어깨너비와 허리둘레, 걸음걸이까지 정밀하게 측정해 옷을 지어주는 '숙련된 재단사의 수제복(비스포크)' 체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지원금의 집행 범위를 원천 봉쇄하듯 규제하는 대신 기업이 현재 가장 목말라하는 영역(해외 특허, 핵심 인력 채용, 글로벌 인프라 구축 등)에 자금을 자율적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커스터마이징(Customization)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지원 기관 역시 단순히 서류를 검토하고 감시하는 '관리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기업의 체형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에 맞춰 맞춤형 지원 체계를 설계해 주는 '전문 재단사(Tailor)'로 거듭나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스페셜리스트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역시 '비스포크' 철학에 있다. 런던의 새빌 로(Savile Row)에서 시작된 테일러샵들은 고객의 신체적 결점을 숨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람만의 장점과 체형을 가장 아름답게 살려내는 맞춤 기법으로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기업 정책 역시 창업가의 단점을 적발하고 지원 항목을 통제하는 데 치중할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가진 독보적인 강점이 시장에서 최고로 발휘될 수 있도록 정책적 핏을 맞춰주어야 한다.

창업 정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제언하고 싶다. 지원 사업의 성과를 몇 개 기업에 얼마의 자금을 나누어주었는지 하는 '공장식 수치'로 증명하려 하지 말라. 단 몇 개의 기업이라도 그들의 몸에 완벽히 맞는 맞춤형 수제복을 입혀 시장이라는 무대에서 마음껏 뛰놀게 만들었는가를 성과 지표로 삼아야 한다. 기성복 정책의 성을 허물고,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지원의 획일성을 깨뜨려라.

창업가들 역시 남들이 입는 기성복 지원 사업에 내 사업을 억지로 맞추려 하지 말라. 지원금을 받기 위해 내 비즈니스 모델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당장의 트렌드 키워드를 사업계획서에 짜깁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내 사업의 고유한 체형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정책 당국과 지원 기관에 우리에게 필요한 '맞춤형 바늘과 실'을 당당히 요구하라.

옷이 몸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옷이라도 걸음걸이가 어색해지고 결국 벗어던지게 된다. 대한민국 창업 생태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기성복을 벗어 던지고 기업의 고유한 색깔과 체형을 살려주는 맞춤형 '수제복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잘 지어진 수제복을 입은 우리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무대를 당당히 누비는 그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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