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완패였다.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24·삼성생명 세계랭킹 1위)이 대기록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천적'처럼 압도했던 상대에게, 더욱이 자신의 주특기를 역이용당했다는 점에서 다소 충격적인 결과였다.
안세영은 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 버밍엄의 유틸리타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전영오픈 여자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왕즈이(26·중국)에게 0-2(15-21, 19-21)로 졌다.
많은 것을 놓쳤다. 안세영은 127년 전통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영오픈 2연패 달성에 실패했고,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온 국제대회 36연승과 올해 16연승 행진에 마침표를 찍었다. 왕즈이에게는 2024년 12월 이후 10연승을 달리다 1년 3개월 만에 패배를 당했다.
안세영이 세계 정상에 오른 비결 중 하나로는 상대의 숨을 막히게 하는 '질식 수비'가 꼽힌다. 그러나 이날 결승전에서는 도리어 안세영이 왕즈이의 철벽 같은 수비에 고전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물론 이날도 안세영은 특유의 환상 수비를 보여주며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러나 왕즈이도 그에 못지 않았다. 그는 코트 구석구석을 찌르는 안세영의 날카로운 공격을 수차례 몸을 날려 막아냈다. 때로는 역부족으로 실점을 하고 바닥에 드러누우면서도 상대의 전략을 알고 있다는 듯 엷은 미소를 띠기도 했다.
왕즈이의 끈질긴 수비에 안세영은 긴 랠리 끝에 샷이 라인을 넘어가거나 네트를 넘지 못하는 등 범실을 잇달아 저지르며 줄곧 끌려다녀야 했다. 표정에서는 안세영이 덜 지쳐 보이는 듯했으나 승자는 결국 왕즈이였다.
왕즈이는 우승 뒤 인터뷰에서 "안세영은 정말 꾸준하고 훌륭한 선수"라며 "항상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준다. 안세영과 상대할 때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전술에 집중해야 한다"고 상대의 플레이 스타일을 철저하게 분석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단 1패일 뿐이다. 안세영은 왕즈이와 통산 성적에서 여전히 18승 5패의 압도적 우위를 지키고 있다. 둘은 나란히 20대 중반의 나이이므로 앞으로도 매년 전영오픈뿐 아니라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등 맞대결 기회가 무수히 남아 있다.
다만, 상대의 '맞불 작전'에 일격을 당한 만큼 '여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새롭고 더 강력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끊이지 않은 부상과 대표팀 내 불화 등 숱한 난관을 겪으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그이기에 팬들은 여전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안세영은 이날 패배 후 자신의 SNS를 통해 "오늘은 아쉽게도 날이 아니네요. 저도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선수가 더 좋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왕즈이 선수의 전영오픈 첫 우승에 축하를 전합니다"며 "이번 경기를 돌아보며 더 발전할 부분들도 많네요. 다음에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