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주주 제안이 정교하고 강력해질까

[유효상 칼럼] 왜 주주 제안이 정교하고 강력해질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6.03.10 06:00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최근 한국 자본시장에서 주주 제안의 빈도와 강도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거세다. 과거 소액주주들의 '배당 확대' 수준에 머물렀던 목소리는 이제 기업 지배구조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교한 전략으로 진화했다. 특히 2026년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LG화학, 고려아연 등 주요 대기업을 향한 주주들의 공세는 단순한 경영 간섭을 넘어, 한국적 지배구조(K-Governance)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주주 제안이 지배주주를 포함한 경영진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만큼 정교해지고 강력해진 것이다.

예전에는 "배당 좀 늘려달라"는 식의 막연한 요구가 많았다면, 이제는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연대도 기관 투자자 수준의 재무 분석 데이터를 활용하여, 기업이 보유한 유휴 부동산이나 효율성이 낮은 계열사 지분을 팔아서 주주에게 환원하라고 구체적으로 압력을 행사한다. 자본 조달 비용보다 낮은 수익을 내는 사업부를 정확하게 지목하며 경영 효율성을 수치로 따지기도 한다. 또한 글로벌 기업들과 ROE(자기자본이익률)나 PBR(주가순자산비율)을 비교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이사회 구성 등 지배구조를 겨냥한 공격도 매우 정교해졌다. 경영진과 유착되지 않은, 전문성을 갖춘 사외이사 후보를 직접 추천하고 선정되도록 하기 위해, '헤이홀더'나 '비사이드' 같은 주주 행동주의 플랫폼을 통해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모으는 '디지털 조직력'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거수기 역할만 하던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 투자자들이 '수익률 제고'를 위해 주주 제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경우가 늘고 있어, 더 이상 주주 제안이 '생떼'가 아닌, 논리적인 경영 컨설팅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인 팰리서 캐피털(Palliser Capital)이 '자본 효율성 제고'와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를 명분으로 LG화학에 내놓은 주주 제안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LG화학이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 지분(약 80%)을 70% 미만으로 낮추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실시할 것, 주주들이 경영 전략이나 자본 배분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제도를 명문화할 것, 사외이사들을 대표하여 주주들과 소통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감시할 '선임독립이사'를 정관에 명시할 것 등이다. 기업 가치가 실제 자산보다 얼마나 저평가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순자산가치(NAV) 할인율을 매 분기 공시할 것도 요구했다.

팰리서는 2023년 삼성, 2025년 SK에 이어 작년부터는 LG를 겨냥했다. 모두 순자산가치 대비 저평가된 상장사의 주식을 산 뒤 자본 배분 개선을 요구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러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 제안은 소액 주주의 환영을 받기도 하지만, 우려 섞인 비판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의 장기적 성장보다는 단기적인 주가 부양과 차익 실현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대규모 자사주 소각이나 고배당은 당장 주가를 올릴 수는 있지만, 미래 성장 동력에 투입될 가용 자금을 고갈시킬 수 있다. 실제로 팰리서는 SK스퀘어 주가가 급등하자 바로 지분을 매각하고 떠났다. 결국 기업의 체질 개선보다는 '수익이 나면 떠나는 자본'이라는 '먹튀' 프레임이 부각되는 이유다.

팰리서는 LG화학의 시가총액이 보유한 자산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게 형성된 이유를 '과도한 자회사 지분 보유'에서 찾았다. 그래서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을 '과잉 자산'으로 규정하고, 일부를 매각해 그 재원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소각하라는 논리다. 더욱 주목할 점은 '권고적 주주제안(Advisory Vote)'과 '선임독립이사(Lead Independent Director)' 제도 신설 요구다.

국내 상법상 주주 제안은 법적 구속력이 약한 경우가 많아서, 이를 보완할 장치를 요구한 것이다.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경영진의 보수나 주요 경영 전략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권고적 주주제안 제도를 정관에 명시하라고 한 것이다.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더라도 경영진이 주주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어렵게 만드는 심리적·정치적 압박 장치다. 선임독립이사제도는 사외이사들의 대표자를 뽑아 주주와 직접 소통하고, 이사회 운영을 독립적으로 이끌도록 하라는 것이다. CEO와 이를 감독하는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라는 요구도 했다. 순자산가치 할인율을 매분기 공시와 신규 투자, 부채 상환, 주주 환원 등에 자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우선순위를 시장에 공표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주주 제안이 이토록 정교하고 강력해진 배경에는 세 가지 결정적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는 행동주의 펀드의 전문성 강화다. 국내외 행동주의자들이 ROE(자기자본이익률) 분석, 비핵심 자산의 가치 평가, 이사회의 독립성 여부를 치밀하게 분석해 경영진이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적 프레임을 제시한다. 둘째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과 법적 환경의 변화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주주들에게 제도적 명분을 실어주었다. 특히 상법 개정안을 통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그동안 대주주의 이익만을 대변해 온 이사회에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셋째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개인 투자자의 권리 의식 성장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의결권 대행 플랫폼의 발달은 흩어져 있던 소액주주들을 하나의 거대한 세력으로 묶어주었다.

이번 주주 제안에 대해 LG화학은 과거의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를 전략적으로 수용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주주 제안을 받아들여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 분리하기로 했다.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기로 한 것이다. LG엔솔 지분 매각 및 자사주 소각도 면밀하게 검토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과 선임독립이사 도입 안건을 정식으로 주주총회에 상정하기로 했으며, 고려아연 지분 등 비핵심 자산 매각 및 차입금 축소를 통해 재무 구조를 개선하라는 요구를 자발적인 밸류업 프로그램에 반영하기로 했다. 비록 펀드가 단기적 수익성만 추구하더라도, 그들이 제기한 주주 제안의 상당 부분은 타당성이 있기에 이를 수용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LG화학이 단순한 석유화학 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준에 맞는 투명한 거버넌스를 갖춘 기업으로 재평가받으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또한 시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 지분 일부 매각을 통한 자사주 소각'이 LG엔솔 분할 상장 후, 크게 하락한 주가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가장 확실한 카드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표 대결에서 확실한 승산이 없다는 것도 전향적인 수용을 택한 이유로 보인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이 최근 '수익률 제고'와 '지배구조 개선'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어, 주주 제안이 합리적임에도 무조건 반대했다가 주총에서 표 대결로 패배할 경우, 경영진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실리적인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주주 제안이 정교하고 강력해지는 상황에서, 한국 자본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기업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와의 '공존'은 과거의 흐름과 비교했을 때 매우 이례적이며 가히 '역사적인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향후 대기업 지배구조의 표준(Standard)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이사회의 독립성, 자본 배분의 투명성,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등이 예상된다. 이렇게 주주 제안의 파고는 한국 자본시장의 '뉴 노멀'을 만들고 있다.

주주 제안의 급증은 경영진에게 분명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경영권에 대한 침해로만 간주해 경계하고 회피한다면, 스스로를 '고립된 성'에 가두는 꼴이 될 뿐이다. 이제 경영진에게 필요한 것은 '주주로부터의 방어'가 아니라, '주주와의 동행'이다. 결국 정교화된 주주 제안은 기업을 위협하는 파고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건강한 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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