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야수를 무조건 믿어야 됩니다."
단 10시즌 만에 1500탈삼진 대업을 써냈다. 미국에서 11년을 보낸 터라 최고령으로 달성하게 됐지만 동시에 최소 경기 기록의 주인공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류현진(39·한화 이글스)은 자세를 낮췄다.
류현진은 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2026 신한 SOL KBO리그 방문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93구를 던져 4피안타 2볼넷 10탈삼진 2실점 호투를 펼쳤다.
지난 1일 KT 위즈전 시즌 첫 등판해 5이닝 2실점(1자책) 호투하고도 불펜 난조로 승리를 놓친 류현진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견고한 투구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6㎞를 찍었고 직구 41구, 체인지업 18구, 커터와 커브를 13구씩 스위퍼도 8구까지 섞으며 다양한 레퍼토리로 SSG 타선을 제압했다.
상대가 압도적인 타선의 힘으로 8경기에서 7승 1패, 단독 1위를 달리던 SSG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은 승리다. SSG는 8경기에서 68득점, 경기당 평균 8.5점을 뽑아내던 시즌 초반 최강 타선이었지만 류현진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류현진은 1회말 기예르모 에레디아를 3구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KBO리그 통산 1500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KBO 역대 7번째 기록인데 류현진은 미국에서 활약했던 11년을 제외한 단 10시즌 만에 이 기록에 도달했다.
2002년 송진우(당시 36세 5개월 26일)를 제치고 역대 최고령(39세 13일) 1500탈삼진의 주인공이 됐는데, 이는 동시에 최소 경기 기록이기도 하다. 1994년 301경기 만에 이 기록을 세운 '전설' 선동열보다도 55경기나 빠른 246경기 만에 이뤄냈다. 매 시즌 평균적으로 150개씩은 잡아내야 가능한 수치다.
이 부문 통산 1위는 양현종(KIA)의 2189개인데,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잡아낸 934개를 포함할 경우 2443개로 압도적 1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더불어 이날 10개의 삼진을 잡아냈는데 이는 KBO리그에서 류현진의 빅리그 진출 전 마지막 경기였던 2012년 10월 4일 넥센 히어로즈전(10이닝 1실점 12탈삼진) 이후 무려 13년 6개월 만이고 정규이닝을 기준으로 해도 2012년 7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전(9이닝 3실점 10탈삼진) 이후 13년 8개월여 만의 기록이다.
메이저리그 시절을 합쳐도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던 2019년 4월 27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전(7이닝 10탈삼진 2실점) 이후 근 7년 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힘보다는 정교한 제구와 노련한 수 싸움에 더 무게를 두고 운영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탈삼진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터였다.
그렇기에 현 시점 최강 타선을 상대로 10개의 탈삼진과 승리를 챙긴 건 퍽 놀라운 일이다.
경기 후 이 기록에 대해 전해들었다는 류현진은 "삼진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다"면서도 "이런 날도 한 번씩 있어야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두 자릿수 삼진을 잡아서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과거 10여년 전 KBO리그에서 활약하던 시절을 돌아본 류현진은 "그때도 삼진을 잡으려는 생각으로 던지진 않았다. 지금과 다르게 힘을 쓸 때는 쓸 수 있어 구속에 변화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게 힘든 것 같다. 삼진을 잡아야 한다고 잡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 당시 유망주들에게 조언을 건네는 과정에서 "수비를 믿고 던지면 안 된다. 네가 잡아야 한다"는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당시 불안했던 한화의 수비 상황과 맞물려 류현진이 탈삼진을 잡아야만 하는 이유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류현진은 "지금은 야수를 무조건 믿어야 된다"며 "제가 삼진 잡을 능력이 굉장히 떨어지기 때문에 야수를 믿고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괜한 말은 아니다. 시속 150㎞는 우습게 던졌던 류현진이지만 이날도 최고 구속이 146㎞에 불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이 오히려 류현진의 롱런을 가능케하고 있는 지점이다.
이전보다 더 야수들을 활용해 타자들을 잡아내겠다는 생각으로 공격적인 피칭을 펼치고 여기에 뛰어난 제구력과 타자를 현혹시킬 수 있는 다양한 구종까지 더해지니 자꾸 유리한 카운트에서 승부를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수싸움에서 우위를 보이고 이는 여전히 많은 삼진을 잡아낼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더위보다 추위에 강한 기질도 시즌 초반 상승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 류현진은 "저는 더운 날보다는 시원한 날이 던지기 더 괜찮은 것 같다"며 "그래서 시즌 초반에 입김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잘 던지고 있고 최대한 몸을 안 식히려고 더그아웃에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2경기 11이닝 4실점(3자책) 14탈삼진, 평균자책점(ERA)은 2.45. 쾌조의 출발이다. 더욱 강력해진 타선도 류현진의 올 시즌을 기대케 하는 요소다. 류현진은 "아무래도 많이 도움을 받을 것 같다. 이전 경기들에서 빅이닝도 많았다"며 "제가 등판할 때도 빠른 이닝에 득점이 많이 나와서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더 긴 이닝을 던질 수 있도록 타자와 빠르게 승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