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이 꿈꿨던 '0%의 기적'은 끝내 현실로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허망한 판정 논란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챔피언 결정전(챔프전·5전 3승제) 무대를 마지막 5차전까지 끌고 가는 저력을 선보였다. 비록 우승 도전엔 실패했으나 그럼에도 팬들의 박수가 쏟아진 이유였다.
필립 블랑(프랑스) 감독이 이끄는 현대캐피탈은 1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챔프전 5차전에서 대한항공에 1-3(18-25, 21-25, 25-19, 23-25)으로 졌다. 앞서 1·2차전 패배 후 3·4차전 승리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던 기세는 마지막 5차전 인천 원정에서 꺾였다.
챔프전 전부터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거란 예상에도 기어코 마지막 5차전 승부까지 펼쳤다. 실제 현대캐피탈은 앞선 플레이오프(PO)에서 우리카드와 두 경기 연속 풀세트 접전을 치렀다. 두 경기 모두 첫 두 세트를 내준 뒤 내리 세 세트를 따내는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다만 그만큼 체력적인 부담을 안은 채,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직행한 대한항공과 마주했다.
심지어 현대캐피탈은 대한항공과의 챔프전 1차전과 2차전마저 모두 풀세트 경기를 치렀다. 포스트 시즌 4경기 연속 풀세트였다. 여기에 2차전 5세트 매치 포인트 상황에서는 석연찮은 판정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극적인 승리 기회를 허무하게 놓쳤다. 체력적인 부담이 가중된 데다 판정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자칫 동기부여나 집중력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었던 위기 상황. 역대 챔프전 1·2차전 승리팀의 우승 확률이 100%였다는 점, 최근 세 시즌 연속 챔프전이 3차전 만에 끝났다는 점 등 역시도 현대캐피탈의 챔프전 전망을 어둡게 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은 포기하지 않았다. 2차전 판정 논란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분노로 가득 찬 현대캐피탈은 홈에서 열린 3차전에 이어 4차전까지 3-0 셧아웃 완승을 거두며 기어코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남자부 챔프전이 마지막 5차전 '끝장 승부'로 이어진 건 지난 2020-2021시즌 이후 다섯 시즌 만이었다.
현대캐피탈 팬들은 '0%의 기적을 현실로 리버스 스윕 가자!' 현수막 등을 통해 사상 최초의 리버스 스윕 우승을 응원했다. 1·2차전 승리팀이 모두 우승을 차지했던 앞선 11차례의 역사를 뒤집는 사상 첫 리버스 스윕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다. 판정 논란 이후 3차전과 4차전에서 셧아웃 완승을 거두며 5차전까지 승부를 끌고 온 터라, 기세만큼은 오히려 대한항공보다 현대캐피탈이 우위였다.
다만 0%의 기적이 쉽게 현실로 다가오진 못했다. 안방으로 돌아온 대한항공의 집중력은 앞선 3~4차전과 달랐던 데 반해, 현대캐피탈은 경기 초반부터 집중력이 크게 떨어진 모습이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찾아온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현대캐피탈은 이날까지 15일 간 무려 7경기를 치렀다. 포스트 시즌 초반 거듭된 풀세트 경기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결국 챔프전 5차전까지 버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3세트를 따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고, 4세트에서도 접전을 벌이며 대역전 우승 가능성을 키웠으나 결국 상대팀의 '우승 축포'를 바라봐야 했다.
비록 남자배구 최초의 역사를 쓰진 못했으나, 현대캐피탈 팬들은 경기 후 선수단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1·2차전 패배로 일찌감치 벼랑 끝에 몰린 데다 판정 이슈까지 겹친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5차전까지 승부를 이어온 것만으로도 팬들에겐 충분한 감동이 됐다. 블랑 감독은 "(판정 논란이 있었던) 2차전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들지는 않았지만, 대한항공에 축하 인사를 전한다. 우승할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며 "천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끝까지 부딪쳐보려 했지만 체력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 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며 챔프전 여정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