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은 아예 한국을 떠났다. 정몽규 회장도 자취를 감췄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중심에 선 리더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다. 끝까지 비겁한 '한때' 두 리더의 모습은, 한국축구가 이렇게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 출국길에 올랐다. 월드컵을 마치고 귀국한 지 불과 이틀 만이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착용한 홍 감독의 모습은 누가 봐도 몰래 출국하려는 이의 모습이었다. 홍 감독 입장에선 '하필' 공항에 있던 한 방송사 취재진에 잡혀 짧은 인터뷰까지 하는 바람에 결국 출국 사실이 알려졌다.
문제는 홍 감독이 월드컵 부진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은 데다, 대표팀 내분설 등 각종 루머에 대해서도 별다른 설명이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자신의 몸부터 피했다는 점이다. 실제 홍 감독은 사퇴하겠다는 입장만 멕시코 현지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했을 뿐 그 이후엔 월드컵 관련 공식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심지어 지난달 30일 귀국길에선 팬들의 거센 비판 목소리에도 고개 한번 숙이지 않고 공항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홍명보 감독의 침묵 속 월드컵 기간 내분설이나 손흥민(LAFC)과 홍 감독 간 갈등설 등 각종 루머들만 번지고 있다. 핵심 미드필더인 이재성(마인츠05)의 남아프리카공화국전 결장 배경을 두고도 온갖 억측이 쏟아지고 있다. 정작 그 중심에 선 홍 감독만 몰래 출국길에 오른 셈이다. 그가 향한 미국 LA에는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심지어 측근에게 당분간 귀국 계획이 없다는 뜻까지 밝혔다는 소식마저 전해진 상태다.
홍명보 감독이 한국을 떠났다면, 정몽규 회장 역시 자취를 감췄다. 어쩌면 홍명보 감독의 선임, 나아가 한국축구 후퇴의 중심에 선 인물인 만큼 가장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할 상황이지만 그 어디에도 정 회장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월드컵을 앞두고 사퇴 의사를 표명하긴 했어도 아직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은 만큼 여전히 축구협회 수장이기도 하다.
월드컵 내내 대표팀과 동행했던 정몽규 회장이지만, 정작 32강 탈락 직후부터는 존재감이 사라졌다. 홍명보 감독 사퇴 발표에 앞서 대한축구협회 대표로 이번 대회 부진에 대해 사과한 건 박항서 월드컵지원단장 겸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었다. 홍명보 감독 등 대표팀이 귀국할 당시 가장 먼저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 역시도, 정 회장이 아닌 박항서 부회장이었다.
당시 정몽규 회장은 홍 감독 등 먼저 입국한 대표팀이 모두 공항을 빠져나간 뒤에야 슬그머니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많은 팬들로부터 거센 비판과 함께 '개껌 투척' 상황까지 마주했다. 대표팀과 정 회장의 항공편이 달랐던 것으로 전해졌으나, 만약 홍명보호 성적이 좋았다고 해도 정 회장이 과연 홀로 다른 항공편을 타고 슬그머니 입국했을지는 미지수다.
심지어 3일 축구협회 차원의 첫 공식입장이 나왔을 때도 정몽규 회장의 이름은 빠졌다. 축구협회는 '축구팬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기대와 다른 결과로 실망을 드린 점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첫 입장을 밝혔으나 누가 팬들에게 사과하는지, 누구 명의의 입장문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번만이 아니다. 앞서 40년 만의 올림픽 진출 실패 등 한국축구를 둘러싼 각종 참사 때도 정 회장은 좀처럼 나서서 사과하거나 책임지기보다, 늘 숨기 바빴다. 이처럼 리더들부터 비겁했던 한국축구의 추락은 애초에 불가피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