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대참사를 맞이한 대한민국 축구의 뒤끝이 씁쓸하다.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책임지는 이가 없는 가운데, 홍명보 전 감독 선임 논란 주역 이임생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 총괄이사의 무책임한 잠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 이임생 전 이사는 월드컵 탈락 이후 축구계의 거센 비판 여론 속에서 아예 공식 석상에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은 채 숨어버렸다. 지난 30일 차범근축구교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해당 축구교실 행사에 참석한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한국 축구를 대참사로 몰고 간 핵심 책임자가 대중의 눈을 피해 사적인 활동만 이어가고 있는 꼴이다.
이임생 전 이사가 보여온 이러한 책임 회피형 행보는 감독 선임 과정에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과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 당시 이 전 이사는 눈물까지 흘리며 결백을 호소했으나, 결국 국회를 상대로 뻔뻔한 거짓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 위증 혐의로 고발당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때 이임생 전 이사는 '국가대표 사령탑 면담 과정에서 누가 동행했나'라는 국회의 질문에 "홍명보 감독이 자주 가는 빵집이라 오후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 둘이서만 만나 대화했다"고 답했다. 공식 브리핑에서도 외국인 감독들을 만나고 귀국하자마자 자신의 의지와 결정으로 홍 감독을 만났다며 "감독 선임의 모든 과정을 홀로 진행했다"고 전권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조사 결과 해당 면담 자리에는 홍명보 감독과 오랜 기간 축구협회에서 함께 일하고 국가대표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최영일 축구협회 부회장이 동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 부회장 역시 동석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 전 이사의 독대 주장은 명백한 위증으로 드러났다.
당시 축구협회는 "최 부회장이 동행했으나 면담에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고, 이 전 이사는 위원들 회유 의혹이 불거지자 "명예가 걸렸다"며 눈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 참사 이후 사과 한마디 없이 모습을 감춘 채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축구 팬들을 향한 기만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이 전 이사가 전권을 휘두르며 데려온 홍명보 전 감독과 행정 수장의 무책임한 행보는 축구계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홍 전 감독은 참패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인 복기 없이 멕시코 베이스캠프에서 고작 2분도 채 안 되는 독백 입장문만 남긴 채 사퇴, 곧바로 LA 자택으로 향해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심지어 지난 3일 축구협회 차원의 첫 공식 입장이 나왔을 때조차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이름은 쏙 빠져있었다. 축구협회는 '축구팬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기대와 다른 결과로 실망을 드린 점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정작 누가 팬들에게 사과하는지, 누구 명의의 입장문인지는 어디에도 밝히지 않은 익명 사과문을 냈다.
정 회장의 이러한 유령 행보는 이번만이 아니다. 앞서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등 한국 축구를 둘러싼 각종 대참사 때도 정 회장은 전면에 나서서 사과하거나 책임지기보다 늘 숨기에 급급한 행보를 보여왔다. 사실상 임기 종료를 앞두고 이번 귀국길에서도 단 한마디의 해명 없이 입을 닫은 행보 역시 그 연장선이다.
감독 선임의 전권을 쥐고 흔들던 핵심 책임자는 꼭꼭 숨어버렸고, 그가 데려온 사령탑은 자택으로 피신했고, 행정 수장은 이름 뒤에 숨어 침묵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다. 이처럼 리더들부터 앞장서서 비겁하게 책임을 회피했던 한국 축구의 추락은 애초에 불가피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