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북한과 뭘 해보려 했는데..." 월드컵 4강 신화 히딩크 감독 '깜짝 고백'

박건도 기자
2026.07.13 10:40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2002 월드컵 직후 한국에서의 인기와 대통령 후보 거론 등 다양한 비화를 공개했다. 히딩크 재단을 설립해 한국에 맹인 아이들을 위한 축구장을 지었으며 북한에서도 사업을 추진했으나 정치적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2002 월드컵 종료 후 서울에서 열린 북한과의 친선 경기 당시의 삼엄한 보안 상황과 무승부 결과에 대해서도 회상했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뉴스1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사상 첫 4강으로 이끌며 한국 축구 역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긴 거스 히딩크 감독이 대회 직후 비화를 공개했다.

축구 전문 매체 '포포투'는 13일(한국시간) 히딩크 감독과 인터뷰를 공개했다. 히딩크 감독은 24년 전 대한민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열광적인 반응과 전폭적인 지원 제안들에 대해 털어놨다.

히딩크 감독은 '포포투'를 통해 "때로는 한국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나로 인해 얼마나 행복해하는지를 보며 약간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다"며 "한국인들은 나를 한국어로 '보스 중의 보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속으로 '그래, 이제 정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라며 웃어 보였다.

대회 당시 히딩크 감독의 인기는 축구장 안팎을 넘어 정치권에까지 대두될 정도였다. 그는 "한 신문사에서는 내 한국어 이름을 제안하기도 했다. 경기장에는 '희동구(Hie Dung-gu)를 대통령으로'라는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며 "일부 사람들은 내가 귀화한다면 좋은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모두 터무니없는 소리였다"라고 덧붙였다.

수많은 혜택과 선물 공세에 대한 뒷이야기도 전했다. 히딩크 감독은 "서울시 명예시민이 되었고 온갖 제안을 받았다. 거절하는 것이 예의는 아니지만, 모든 것을 다 수용할 수는 없었다"며 "제주도에 있는 빌라를 제안받기도 했지만, 유럽으로 돌아간 뒤 주말을 보내러 그곳까지 갈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거절했다"고 고백했다.

2022년 KFA 지도자 컨퍼런스에 참석한 거스 히딩크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이러한 세간의 엄청난 관심과 일화 속에서도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한국과 깊은 끈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일 년에 한두 번은 한국을 방문한다. 갈 때마다 언제나 양팔을 벌려 환영해 준다"며 "내 파트너의 제안으로 거스 히딩크 재단을 설립했고, 한국에 맹인 아이들을 위한 경기장을 포함해 여러 개의 축구장을 지었다. 패딩 벽이 설치되고 방울이 든 공을 사용하는 특수 경기장인데, 나도 안대를 쓰고 직접 움직여보려 했지만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고 전했다.

북한과 관련된 비화도 소개했다. 히딩크 감독은 "재단을 통해 북한에서도 무언가를 해보고자 했다. 실제로 북한에 가보기도 했고 자재를 실은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히딩크 감독은 2015년 북한을 방문해 시각 장애인 전용 풋살 경기장 사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2002 월드컵이 끝난 뒤 서울에서 북한과 친선 경기를 치른 적이 있다. 경기 전날 남북 선수단이 함께 저녁 식사를 했는데, 북한 측의 감시와 보안이 엄청났다. 그들은 선수가 탈출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경기는 외교적으로 0-0 무승부로 끝났다"라고 회상했다.

히딩크 감독의 4강 신화는 한국을 넘어 네덜란드 고향까지 이어졌다. 그는 "내가 태어난 네덜란드 시골 동네인 바르스벨트에도 2002년 월드컵 덕분에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이 찾아왔다"며 "안타깝게도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내 큰형이 상업적 수완이 좋았는데, 내가 걸어 다녔던 고향 땅의 흙을 작은 병에 담아 파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게 실제로 꽤 잘 팔렸다. 다섯 형제와 함께 자란 내 가족들은 나의 모든 모험을 늘 가까이서 지켜봐 줬다"고 따뜻한 추억을 전했다.

히딩크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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