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께서 우시는데, 선수들 다 마음이 안 좋았죠."
레슬링 국가대표 정한재(31·수원시청)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20일 충북 진천의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진행된 2026 아이치·나고야 하계 아시아경기대회(아시안게임) D-30 미디어데이 레슬링 공개 훈련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다. 레슬링 대표팀은 전날에도 따로 미디어데이를 진행했는데, 안한봉 감독은 "이번 대회만큼은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다"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공개석상에서 흘린 감독의 눈물은 정한재 등 선수들에게는 적잖은 충격이기도 했다. 관련 이야기에 정한재가 한숨을 내쉰 이유였다.
전날 안한봉 감독의 눈물의 의미는 그야말로 물러설 곳이 없는 레슬링의 현주소와 맞닿아 있었다. 레슬링은 한때 국제대회에서 대표적인 효자 종목이었으나, 지난 2020 도쿄 올림픽 노메달 수모에 이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 2개에 그쳤다. 특히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조차 따지 못한 건 1966년 방콕 대회 이후 무려 57년 만의 굴욕이었다. 한때 효자 종목이었던 레슬링은 이제는 국제대회를 앞두고 많은 기대를 받지 못하는 종목이 됐다.
파리 올림픽 이후 지휘봉을 잡은 안한봉 감독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레슬링이 최근 시련도 겪고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면서 "부임 초기엔 경기에서 패한 뒤 많이 울기도 했다. 지금은 그래도 희망이 보인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과거 애국지사는 태극기에 혈서를 쓰고 독립운동을 했다. 군인은 팔에 태극기를 달고 나라를 지키고 있다. 선수들도 당당하게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레슬링이 죽지 않았다'는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질 때 지더라도, 한국 레슬링이 창피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감독의 눈물은 고스란히 선수들에게는 큰 자극제가 됐다. 정한재는 "감독님이 평소에 장난도 많이 치시고, 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미디어데이에서 우시니, 선수들 모두 마음이 안 좋았다"며 "오늘 훈련에 오기 전에도 선수들끼리 '더 열심히 해서 금메달로 보답하자'는 마음을 다시 한번 잡았다"고 했다.
최근 레슬링 대표팀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한 부담은 반대로 동기부여로 삼고 있다. 정한재는 "(레슬링에서) '금메달이 안 나온다'는 말을 들을 때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 채찍질하고 있다. 오직 금메달만 생각하고 있다. 제가 해야 될 것만 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하며 더 자신감 있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정한재는 이번 대회 레슬링 대표팀에서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힌다. 레슬링 대표팀은 대회 목표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6개를 잡았는데, '유일한 목표 금메달'이 바로 정한재의 남자 그레코로만형 67kg급이다. 그는 지난 항저우 대회 당시 동메달, 그리고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준우승을 각각 차지했다.
정한재는 "항저우 대회 당시엔 체중 감량을 너무 많이 해서 실력이 반 이상 안 나왔다. 지금은 체중 감량도 없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고 생각한다. 레슬링적으로나, 마인드적으로나 성장했다"고 자신했다.
이어 "이번에는 무조건 금메달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제가 할 수 있는 능력을 끌어올려서 무조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그래서 '레슬링이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게 최고 목표다. 금메달을 따서, 레슬링이 다시 효자종목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