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미꾸라지' 뒤 이을 새로운 재야 고수는?

강상규 소장
2015.06.07 10:00

[행동재무학]<96>40대 퇴직 후 전업투자에 나선 사람들

[편집자주] 행동재무학(Behavioral Finance)은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행태를 잘 파악하면 소위 알파(alpha)라 불리는 초과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주식시장이 너무 좋아서, 재취업은 크게 서두르지 않아...사업? 그건 아무나 하냐?”

요즘 40대에 이런저런 이유로 회사를 나온 대학 및 고등학교 동창들이 많다. 이들을 만나면 모두들 40대에 재취업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와 같다며 고개를 절레 흔든다. 회사를 그만둔 지 1년쯤 되는 동창은 ‘정말 (재취직이) 안 되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젠 체념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에게 그럼 사업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말해 보면 “괜히 돈만 날린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는 게 중론이다. 그래서 그런지 40대 퇴직한 이들 가운데 창업에 나서는 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들 40대 퇴직자들의 목소리가 요즘 그렇게 침울하지 않다. 만나도 의기소침하거나 결코 주눅들지 않는 모습이다. 이유는 올들어 주식시장이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려운 재취업이나 위험한 창업 대신 주식투자로 꽤나 짭짭한 수익을 내고 있다. 어쩌면 주식시장이 너무 좋아서 재취업이나 창업에 그렇게 목을 매지 않는 지도 모른다.

요즘 주위에 40대에 퇴직해서 재취업이나 창업 대신 주식투자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 아예 조그만 사무실을 얻어 본격적인 전업투자자로 나서는 이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식시장이 좋지 않아서 주식투자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올해 완전히 반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까지 이어진 주식시장 불황 탓에 많은 증권사 리서치 애널리스트들과 펀드매니저들이 구조조정을 당했는데, 이들이 지금은 전업 투자자로 나서며 국내 증시를 이끌고 있다는 우스개소리까지 들린다.

전 직장 동기 한명도 최근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아예 전업투자자로 나섰다. 법인을 설립하고 서울 시내에 조그만 오피스텔까지 얻어 전문적인 주식 트레이더의 삶을 살고 있다.

원래 직업이 주식과 채권 트레이더였던 그는 이제 회사 자본이 아닌 자기 돈을 굴리며 상당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실제로 전업 투자자로 나선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매달 20% 이상의 수익률을 내고 있다고 은근히 자랑을 마다 하지 않는다. 그는 아예 창투사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가 워낙 주식을 잘하는 선수라 사람들은 그의 목표 달성을 낙관하고 있다.

약 15년 전인 2000년대 초반에도 많은 40대들이 회사를 나와 전업투자자의 삶을 걸었다. IMF 위기 이후 많은 대기업들이 문을 닫고 직원들이 구조조정을 당하면서 수많은 40대 직장인들이 옷을 벗어야했다. 그 당시에도 재취업이 힘들었고 창업은 지금보다 더 위험하다고 여겼기에 이들 40대들은 주식시장으로 몰려 갔다.

마침 인터넷 붐과 벤처 붐이 일면서 새로운 기술주에 돈이 몰렸고 증권사 매장엔 'Buy Korea'를 외치며 대박을 좇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예 기업공개 전 장외에서 주식을 사놓고 기다리겠다는 심산으로 장외시장과 프리코스닥 시장을 기웃거린 이들도 많았다. 이때 주식시장에는 수백억 원 대를 굴리는 40대 전업 투자자인 재야의 고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식투자 광풍은 재야의 전업 투자자들에게 분 것만은 아니었다. 현업에 있던 몇몇 증권맨들은 선물옵션시장에서 맹활약하며 국내 증시를 흔들었다. '압구정동 미꾸라지(윤강로씨)', '목포 세발낙지(장기철씨)'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필명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들도 너나할 것 없이 주식투자에 매달렸다. 회사에 출근해선 데이트레이딩, 오후에는 벤처기업을 찾아나서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지금은 회사 PC에선 주식 트레이딩을 할 수 없도록 HTS가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제약이 없었다.

올해 주식시장은 15여 년 만에 또다시 전업 투자자에게 최고의 기회를 안겨다 주고 있다.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8%와 30% 가량 올랐지만, 두 세배씩 오른 개별 종목들이 상당수다. 전업 투자자들 대부분은 특정 종목을 골라 베팅하는 액티브(active) 투자자들이기에 올해와 같이 종목 장세가 펼쳐지는 해엔 대박을 거둔 이들이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지금 40대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투자자로 나선 이들 가운데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을 굴리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투자규모는 15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투자수익도 과거에 비해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과거의 '압구정동 미꾸라지'나 '목포 세발낙지' 등과 같이 유명세를 떨친 고수들이 아직까진 나타나고 있지 않다.

전업 투자자로 나선 전 직장 동기에게 “주식시장 좋은 건 한 때 아니냐?”며 재취업 의향을 물었더니 그는 씩 웃으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한마디 내뱉었다. “주식시장이 올해 말까진 죽 갈 걸”

올해 '압구정동 미꾸라지'나 '목포 세발낙지'의 뒤를 이을 새로운 재야의 고수가 떠오를까? 그 친구가 '마포 갈매기(?)' 쯤으로 불리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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