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금융의 삼성전자는 왜 없을까

송정훈 기자
2015.09.23 16:30

10여 년 전으로 기억한다. 홍콩을 방문해 금융 전문가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전문가들은 홍콩이 아시아 금융 중심지가 된 배경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놨다. 그 중에서도 철저한 시장 중심의 금융규제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금융당국이 불합리한 금융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규제를 도입한다는 얘기다.

그 결과 세계 각국의 금융사가 앞 다퉈 홍콩에 진출해 자유롭게 경쟁하며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면서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면서 "한국도 금융개혁으로 규제 일변도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건 금융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한국에서도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금융사가 탄생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기대를 가지게 된 것도 이 때쯤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최근 만난 금융투자업계 인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규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게 없다"며 "다른 성장 정책과 서로 상충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금융권이 여전히 업종에 상관없이 다양한 '규제의 덫'에 허덕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게 내년부터 새로 도입되는 증권사 건전성 규제다. 업계에선 건전성 규제가 대형 증권사 육성이라는 정부 정책과 엇박자를 내면서 증권사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발단은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0월에 내년부터 증권사의 새로운 건전성 규제인 레버리지 비율(자기자본 대비 총자산)을 도입키로 하면서 시작됐다. 레버리지비율이 1100% 이상이면 경영개선권고, 1300% 이상이면 경영개선요구 등 적기시정 조치를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레버리지비율이 높은 상당수 증권사들은 금융상품 판매를 축소해 자산을 줄이거나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본을 늘려 레버리지비율을 낮춰야 한다. 신한금융투자 등 레버리지비율이 1000%에 육박하는 상당수 증권사들은 대주주의 증자 부담 등으로 자본 확충도 여의치 않아 울며겨자먹기로 상품 판매를 줄여야 한다.

레버리지비율이 900% 안팎인 미래에셋증권은 대규모 유상증자에 나섰다. 하지만 증자자금을 M&A(인수합병)와 대규모 투자자금으로 사용하게 되면 결국 상품 판매 축소가 불가피하다. 저금리 장기화로 증권사 금융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증권사들은 오히려 규제 떄문에 상품 판매를 줄여야 할 판이다.

일각에선 레버리지비율 규제가 한국형 종합금융투자업자(IB) 육성 정책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2013년부터 종합금융투자업자 제도를 도입해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대형 증권사 5곳을 IB로 지정했다. 이들에 일정수준 은행처럼 기업신용공여(여신) 업무를 허용하는 등 정책적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지난 10년 동안 세 번의 정권이 들어서 줄기차게 금융개혁을 부르짖으며 규제 타파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도 금융권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대론 앞으로 10년, 그 다음 10년이 지나도 삼성전자 같은 금융사가 나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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