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국민연금 '역린' 건들기 전 해야 할 일

전병윤 기자
2018.08.13 14:49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정부가 국민연금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해 연금을 '더 내고 늦게 받는'식의 개혁안 검토에 나서자 민심이 요동친다. 국민연금 제도 개혁은 '역린'이어서, 선진국도 연금 개혁이 정권 교체의 연결고리로 작용했을 정도다.

그런데 정부가 이 난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기금 운용에 대해선 후순위로 판단한다는 생각이 든다.

공적 연금은 인구 변화와 경제성장률 둔화 등을 반영해야 하므로 일정 시점마다 어느 정도의 손질이 불가피하다. 다만 연금 개혁 과정에서 운용 개선을 위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미 지난해부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인력 이탈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국민연금기금 630조원의 운용을 책임질 CIO(최고운용책임자)인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해 7월부터 공석이지만 1년 넘도록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1차 공개모집에서 최고점을 받았던 지원자를 놓고 인사 검증에만 2개월을 끈 뒤에야 돌연 병역 문제를 이유로 탈락시켰다. 최근 재공모를 진행 중이긴 한데 후보자 중 상당수는 운용 경험이 없는 증권사 출신이거나 자산운용업계에서 퇴직한 '올드보이'가 차지한다.

유능한 인재 영입을 위해 삼고초려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지만, 최근 인선 과정을 보면 공백을 메우는데 급급한 미봉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금운용본부장뿐만 아니라 운용부서 5곳 중 주식운용·대체투자·해외증권·해외대체 등 4개 부서 실장이 그만둬 직무대리 또는 겸임 체제로 임시 운영됐다. 그럼에도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최근 인력 이탈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조직 누수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낮은 연봉과 지방 근무가 대표적이다. 3년 미만의 단기계약직, 민간 운용회사 대비 절반 수준의 연봉이란 악조건 속에서 전주 근무는 인재 영입의 마지노선마저 무너뜨렸다는 분석이다.

전주 이전 후 금융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실도 경쟁력 약화 요인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런 우려에 대해 "글로벌 투자시장으로 진출해야 하는 시기에 본사가 서울이냐 전주이냐를 따지는 건 지엽적인 문제"라고 일축했다.

정말 그럴까. 어디에 있든 운용하는데 영향이 없다면 민간 투자회사가 비싼 임대료를 내며 서울, 그것도 여의도 한복판에 모여 있을 이유가 없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민간 투자회사와 매일 수익률 전쟁을 치러야 하는 조직이다. 투자 정보와 네트워크가 집중된 곳에 진지를 구축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세계 3대 연기금이니까 세계 유수의 투자기관이 알짜 정보를 담은 보따리 들고 전주로 찾아올 것이란 생각은 오만보다는 무지에 가깝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1%포인트 올라가면 고갈 시점을 5년 뒤로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수익률을 0.1%포인트라도 높일 수 있다면, 이념이나 이해득실을 넘어 실사구시의 자세로 원점부터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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