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0월19일, 뉴욕증시 역사상 최악의 날로 기록된 '블랙먼데이'가 33년만에 재현됐다.
16일(현지시간) 월요일,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무려 13%나 폭락하며 역대 3번째 하락률을 기록했다. 역사상 이날보다 하락률이 컸던 날은 블랙먼데이와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당시 1929년 10월28일 뿐이다.
'제로금리'와 '양적완화'(QE)도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병)에 따른 경기침체 공포를 이기진 못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블루칩(우량주) 클럽인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997.10 포인트(12.93%) 급락한 2만188.52로 거래를 마쳤다.
대형주 위주의 S&P(스탠다드앤드푸어스) 500 지수는 324.89 포인트(11.98%) 떨어진 2386.13을 기록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970.28포인트(12.32%) 추락한 6904.59로 마감했다. 나스닥 역사상 최대 하락률이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선 개장 직후 S&P 500 지수가 7% 이상 급락하면서 또 다시 15분간 서킷브레이커(일시매매정지)가 발동됐다. 일주일 사이 3번째다.
다우지수를 구성하는 30개 종목이 모두 하락했다. 항공기주 보잉은 23%, 인텔과 테슬라는 18% 이상 속락했다.
은행주들도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JP모건체이스는 약 15%, 골드만삭스는 약 13% 내려앉았다.
MRB파트너스 투자전략팀은 "코로나19(COVID-19) 사태는 좋아지기 전에 더 나빠질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확진자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비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8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 주가 폭락세에 기름을 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코로나19가 7∼8월 또는 그 이후까지 통제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핫스팟(감염다발지역) 등 특정 지역에 대한 봉쇄는 고려 중"이라면서도 "전국적인 봉쇄는 고려한 바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경 봉쇄도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참석자 10명이 넘는 모임을 피해야 한다"며 "식당과 술집 방문 또는 여행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11월 대선을 위한 주별 경선의 연기 여부에 대해선 "주 정부가 결정할 일"이라며 발을 뺐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은 경기침체로 가고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은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항공사들을 100%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따르면 이날 현재 미국내 코로나19 확진자는 4287명, 사망자는 74명이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약 18만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7000명을 넘어섰다.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제로'(0)로 끌어내린지 하루만에 또 초단기 유동성을 추가 투입하며 시장 달래기에 나섰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연준에서 공개시장조작을 맡고 있는 뉴욕연방준비은행(뉴욕연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오버나이트(하루짜리) 레포(Repo·환매조건부채권) 거래를 5000억달러(약 600조원) 한도에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레포 거래는 15분 동안 한시적으로 이뤄졌다.
이번에 설정된 레포 거래 한도는 기존에 있던 1750억달러와는 별개다. 또 연준은 2주짜리 레포 거래 역시 450억달러 한도로 운용 중이다.
전날 연준은 기준금리를 1.00~1.25%에서 1%포인트 긴급 인하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기준금리는 0.00%~0.25%로 떨어지며 2015년 이후 5년만에 '제로 금리'에 돌아갔다.
연준은 또 7000억달러(약 853조원) 규모의 양적완화(QE)도 실시키로 했다. 여기엔 5000억달러 규모의 국채와 2000억달러 규모의 모기지증권(MBS) 매입도 포함된다.
아울러 연준은 은행 할인 창구에서 긴급 대출 금리를 연 0.25%로 낮추는 한편 대출 기간을 90일로 늘렸다. 은행에 대한 지급준비금 요구 비율도 '0'으로 줄였다.
G7(주요 7개국) 정상들도 팬데믹에 맞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키로 뜻을 모았지만 역시 시장을 떠받치기엔 역부족이었다.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이탈리아 등 G7 정상들은 이날 약 50분간의 화상 회의를 마친 뒤 공동성명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경기부양 공조를 위해 앞으로 G7 각국 재무장관들은 매주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조율하게 된다.
정상들은 이번 사태를 인류의 비극이자 세계적 보건위기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로 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코로나19는 세계 경제에 중대한 위협"이라며 "바이러스를 더 잘 이해하고 억제하기 위해 코로나19 관련 자료를 모두 공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 성명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응책에는 적절한 국경 제한 조치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전세계 공급망과 국제 무역에는 영향이 없도록 하기로 했다.
정상들은 IMF(국제통화기금)와 WB(세계은행)에 공동 대응을 위한 자금 지원을 촉구했다. 때맞춰 IMF는 이날 각국에 조율된 경기부양책을 촉구하면서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입은 회원국 지원을 위해 1조달러(약 1200조원) 규모의 대출 역량을 갖춰 놨다고 밝혔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이날 성명을 통해 "공중 보건 영향 면에선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19를 퇴치하기 위해 바람직한 처방이지만 글로벌 경제 보호를 위해서는 정확히 반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간 지속적인 접촉과 긴밀한 조율이야말로 이 바이러스가 일으킨 경제적 고통을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되지 않게 할 최고의 약"이라고 강조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장기적인 경제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추가로 재정적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며 "잘 조율된 동시다발적 글로벌 재정정책의 필요성이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작업은 통화에서 재정, 규제에 이르기까지 협력적으로 이뤄질 때 가장 효과적"이라며 "은행들은 현존 규제에 관해 유연성을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전날 연준의 '제로금리' 도입을 '대담하고 조율된 통화정책'이라며 높이 평가한 뒤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완화적인 재정 여건과 실물 경제에 대한 신용 흐름을 보장해 계속해서 수요를 지원하고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증시도 반등 하루만에 급락했다.
EU(유럽연합)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30일간 회원국으로의 불필요한(non-essential) 여행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는 소식 탓이다.
이날 범유럽 주가지수인 스톡스유럽600은 전날보다 14.53포인트(4.86%) 내린 284.63으로 거래를 마쳤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지수는 489.83포인트(5.31%) 떨어진 8742.25,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40지수는 236.90포인트(5.75%) 급락한 3881.46에 마감했다.
영국 런던 증시에서 FTSE100지수는 215.03포인트(4.01%) 하락한 5151.08을 기록했다.
항공주들이 하락세를 주도했다. 이지젯은 19%, 에어프랑스는 10% 급락했다.
EU의 행정부 수반 격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여행을 덜 할수록 바이러스를 더 억제할 수 있다"며 "EU로의 불필요한 여행 제한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제한은 우선 30일간 시행되고 필요에 따라 연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EU 회원국 국적자의 가족, 의료진 등 필수 인력, 상품 운송업자 등에 대해서는 여행이 허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유가 역시 10% 가량 폭락하면서 배럴당 30달러선이 붕괴됐다. 4년만에 최저치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WTI(서부 텍사스산 원유)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3.0달러(9.5%) 급락한 28.7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제유가의 기준물인 5월물 북해산 브렌트유는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이날 밤 8시56분 현재 4.1달러(12.1%) 폭락한 29.74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2016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 가격도 내렸다. 이날 오후 4시3분 현재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물 금은 전장보다 14.30달러(0.94%) 내린 1502.40달러를 기록했다.
미 달러화는 강세였다. 이날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인덱스(DXY)는 전 거래일보다 0.71% 내린 98.04를 기록했다. 달러인덱스는 유로, 엔 등 주요 6개 통화를 기준으로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