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에 가져올 혜택뿐 아니라, 위험성도 함께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김대식 교수) “‘감정 소통 로봇’ 같은 주제로 제작 공모전을 해보고 나니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를 지금부터 대비해야겠죠.”(노소영 관장)
대기업 총수 부인과 뇌 과학에 정통한 유학파 교수의 의기투합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르면 20년 후, ‘인공지능’이 초래할 부작용과 사회적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공통 인식이 ‘우연히’ 두 사람 사이에서 싹텄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뇌 과학자 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이 공통 인식을 바탕으로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포럼 행사를 준비 중 인 것으로 16일 전해졌다. 인공지능을 먼 미래의 일로 넘기지 않고 현실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특별한 시도로 비치고 있다.
노 관장과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 ‘인공지능’ 관련 연구 모임인 ‘싱귤래리티(singularity) 99’를 발족했다. ‘싱귤래리티’는 기계능력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기 시작한 시점을 뜻하며, ‘99’는 기술의 발달로 99%가 일자리를 잃고 1% 슈퍼 프로그래머만 부와 권력을 차지하는 사회를 경계하겠다는 의미로 쓰인다.
두 사람이 이 모임을 결성한 까닭은 무엇일까. 노 관장은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현재 서울대·서강대 융합 전공 겸임 및 초빙 교수를 맡는 등 과학계에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는 아트센터 나비에서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여러 차례 다양한 실험을 수행했고, 올해 ‘감정 소통 로봇(사람이 할 일을 대신해주는 기계) 프로토타입’ 제작 공모전을 실시하는 등 인공지능에 대해 남다른 애착과 관심을 보여왔다. 개인적인 관심사와 부합한다는 것이 첫째 이유다.
결정적인 동기는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과학계에서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기 때문.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 등 세계적 석학들은 “인공지능이 촉발할 이른바 ‘2차 기계혁명’으로 사회·경제·정치가 ‘도미노식’ 혼란을 빚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폈다.
여기에 김 교수가 불을 지폈다. “적어도 20~30년 후 국·영·수를 할 줄 아는 기계가 등장하면 인간은 기계와 일자리를 두고 다툴 것”이라며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에 가져올 위험성과 혜택을 함께 검토해야 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 김 교수의 의미심장한 발언이 노 관장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싱귤래리티 99에는 노 관장의 장녀인 최윤정 씨가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 중이다. 최씨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바이오 기술 분야를 전공한 예비여성과학자다.
싱귤래리티 창단 회원들은 지난 15일 앞으로 운영 방향을 모색하는 회의를 열었고, 김 교수는 올해 상·하반기에 각각 1회씩 국내, 국제 규모의 포럼행사를 추진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공지능 관련 국제 규모의 포럼은 미국 MIT, 스탠퍼드대, 영국 옥스퍼드대와 프린스턴대 등 4곳에서 현재 운영 중이며, 싱귤래리티 99가 계획대로 추진하면 아시아에선 첫 번째 포럼 행사가 된다.
싱귤래리티 99는 이 행사에서 △인공지능시대 교육시스템 △관련 법제도 신설 및 정비 △실업률을 낮출 경제정책 제시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정치, 재계 및 법조계 등 사회·과학기술 관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논제를 풀어갈 예정이다. 또 최근 개설한 인터넷 커뮤니티(www.singularity99.com)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인공지능의 장·단점도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을 통한 ‘2차 기계혁명’ 시대를 무조건 좋게만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일어날 문제에 대해 먼저 접근해 그 해결방안을 논의하고, 사회 혼란을 줄여 인간에게 더욱 유익한 인공지능 시대를 맞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