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신제윤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금융당국 수장들이 잇달아 ‘핀테크(fintech)’ 활성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중국 등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가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동안 국내는 장막이 쳐진 듯 핀테크에 대해 충분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비판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매우 적극성이 담겨 있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기존 금융기관들은 핀테크 활성화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고,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등 핀테크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을 꾀하려는 기업들은 여전히 핀테크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쉽게 제거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ICT 기업과 경제연구소, 금융권 등 현장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뒤늦게 출발하는 국내 핀테크 분야가 꽃피기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2월 19일 ‘IT·금융 융합 지원을 위한 제2차 현장 간담회’에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신 위원장은 “시장 초기 단계인 국내 핀테크 산업이 낯선 금융규제 환경, 부족한 자본력과 같은 금융산업 적응의 한계로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에도 불구하고 시장적응을 하지 못하고 퇴출되는 일이 없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신 위원장은 “사전적 규제 방식에서 사후점검 방식으로 기존 규제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이며, 오프라인 중심의 금융규율을 온라인·모바일 시대에 맞게 재편할 것”이라고도 했다.
신 위원장은 지난 1월 5일 ‘2015년 범금융권 신년인사회’에서도 “핀테크, 창조금융 등 시대적 조류를 활용해 한국 금융의 성장동력이 끊임없이 창출되도록 금융혁신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며 핀테크 활성화 의지를 또 다시 나타냈다.
금융당국 수장들의 잇따른 핀테크 발언
또 이 자리에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핀테크, 인터넷 전문 은행 등 보다 가볍고 빠른 플레이어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고 업권간 칸막이를 완화해 금융산업에 경쟁과 혁신적인 변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금융 소비자와 공급자가 직접 거래하는 탈중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핀테크 조류를 언급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도 지난해 12월 29일 기자단 송년모임에서 “금융환경 변화를 감안한 규제 합리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진취적 경영환경이 필요한 핀테크 분야에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상담지원센터 운영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정부의 핀테크 활성화 조치가 올해 상반기에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방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꾸려져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금융당국 수장들의 핀테크 관련 발언이 잇따르는데 대해 금융기관들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금융지주 연구소 연구원은 “인터넷 전문 은행을 비롯해 핀테크가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하지만, 모두가 간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많은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고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연구원은 “이 같은 생각이 기존 금융권의 일반적인 분위기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금융당국과 금융기관 등 기존 금융권의 보수성 때문에 핀테크 활성화 조치의 실효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ICT 기업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규제개혁을 얘기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며 “(스스로 규제개혁을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른 쪽에서 강하게 ‘푸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ICT 기업 관계자는 “최근 금융당국은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금융기관은 여전히 보수적이어서 (핀테크 활성화 조치의) 실효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다음카카오를 필두로 핀테크 관련 서비스가 점차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음카카오는 지난해 하반기에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인 ‘카카오페이’와 모바일 월렛 서비스인 ‘뱅크월렛카카오’(뱅카)를 연이어 출시했다. 카카오페이는 현재 모든 신용카드사들이 참여하는 국내 유일의 간편결제 서비스로, 최대 20개의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 정보를 등록해 사용할 수 있고, 사전에 등록한 비밀번호만으로 결제할 수 있다. 뱅카는 모바일 송금과 결제, 은행현금카드를 하나로 통합한 모바일 전자지갑으로 시중은행들과 협업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회사 측은 카카오페이는 출시 한 달 만에 12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했고, 뱅카는 출시 3주 만에 가입자수 5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가입자 추이는 밝히지 않고 있다. 다음카카오는 바코드 지원 등 기능 확대와 가맹점 확보를 통해 올해 상반기에 오프라인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내 핀테크 태동…외국과 격차 너무 커
이밖에 네이버도 해외 시장을 겨냥해 ‘라인페이’를 내놓은데 이어 국내 시장을 타깃으로 ‘네이버페이’를 출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국내에서 핀테크 서비스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핀테크 분야는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로 이미 상당한 규모에 이른 해외와는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온라인 결제 업체 페이팔의 온라인 결제액은 지난해 3분기 560억 달러를 돌파해 전년 대비 20% 상승했다. 애플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 애플페이가 2016년 거래액이 20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알리페이의 연간 결제액은 700조 원에 달하고, 중국 내 시장점유율이 50%에 육박한다. 알리바바의 온라인 전용 마켓머니펀드(MMF)인 ‘위어바오’는 출시 9개월 만에 가입자 8000만 명, 수탁금 83조 원을 달성했다. 위어바오의 수탁금은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중국 1위, 세계 4위 규모다.
국내 핀테크를 조속히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이 한국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점을 주요한 이유의 하나로 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알리페이가 한국에 이미 500여 개의 가맹점을 확보했고, 월 2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까지 한국에 들어온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에 머물고 있지만, 알리페이의 서비스가 앞으로도 중국인에 한정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다. 꾸준히 가맹점을 늘리고 관련 제도의 변화에 맞춰 한국인을 대상으로 사업을 펼칠 것이라는 얘기다. 페이팔도 한국시장을 눈여겨보고 있는 상황이다.
류영준 다음카카오 페이먼트사업셀 부장은 “알리페이의 덩치는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현재 자국민에 대해서만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향후 어떻게 풀릴지 모른다”며 “(외국계 기업의 국내 진출에 대비해) 국내 업체가 빨리 경쟁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국내 핀테크 기업 관계자는 “국내에서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에게 (국내 핀테크 서비스 시장이) 점령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제에만 머문 핀테크 대상 넓혀야
관련업계에서는 핀테크 관련 논의가 본격화되는 올해가 국내 핀테크 산업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실효성 있는 규제 개선과 함께 핀테크 활성화 대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선 제도 개선과 관련해 공인인증서의 완전한 퇴출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 ICT 기업 관계자는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전자상거래뿐이고 다른 금융거래는 본인인증 수단으로 공인인증서만을 적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고 “과거에는 보안과 편리성이 양립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며 전향적인 공인인증서 퇴출을 주장했다.
공인인증서는 명확한 법률적 근거 없이 금융당국이 10여 년간 강제했다가 지난해 다소 완화해 온라인 구매 시 공인인증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정작 금융기관은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면 문제가 생겨도 면책될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밖에 금융실명제법상 대면 확인 의무, 핀테크 기업들의 금융정보 공유 제한 등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현재는 불가능한 비금융권 기업의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 허용 여부와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금산분리 원칙과 관련해 전통적인 산업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 대규모 그룹사와 그 외의 기업을 구분해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비금융권 기업의 인터넷 전문 은행 설립을 허용하되) 대주주 적격심사 등을 통해 이른바 재벌을 배제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현재 결제와 송금에만 맞춰져 있는 핀테크에 대한 관심을 보험, 예·적금, MMF, 대출, 자산관리 등으로 넓히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핀테크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실험적인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 서비스하고 이후 대형 금융기관이 이를 채택해 발전시키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의 경우 스타트업들이 핀테크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 100만 달러 규모의 송금 서비스를 하고 있는 트랜스퍼와이즈, SNS 등을 통해 200개에 육박하는 국가에 대한 송금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지모, P2P 대출을 중개하는 조파 등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며 주목받고 있다.
또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이 10개 핀테크 기업을 선정, 직접 지원하는 등 해외 금융사들이 유망 핀테크 기업을 인수하거나 스타트업 육성에 직접 나서는 것도 일반화되고 있다. 액센추어에 따르면, 핀테크 벤처에 대한 국제 투자 규모는 2008년 1조 원에서 5년 만에 3조 원 규모로 늘어났고, 2018년에는 8조 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핀테크 스타트업 육성이 선순환 고리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핀테크 분야의 스타트업을 찾아보기 힘들고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받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기존 금융기관들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핀테크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ICT 기업 대표는 “핀테크는 기본적으로 IT를 기반으로 한 금융 혁신이기 때문에 ICT 기업과 기존 금융권 간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며 “해외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핀테크 분야를 발전시켜 왔는데 국내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핀테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별다른 아이디어나 계획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ICT 기업 등과 금융권의 적극적인 논의와 협력을 통해 금융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 핀테크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동식 기자